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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도박시설 입장횟수 제한하자

중앙일보 2016.03.11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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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사회부문 기자

“불법 스포츠토토 하는 친구들은 한 반에 4~5명은 기본이죠. 선생님들도 다 알지만 말리지 못해요.”

지난달 4일 지방 중소도시에서 만난 고교생 박모(18)군의 말이다. ‘도박에 빠진 대한민국’ 시리즈(총 3회) 취재를 하면서 도박산업이 당초 예상보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생생한 사례로 확인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10대 청소년부터 중년까지 한탕주의 대박 환상에 빠져 있다.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敗家亡身)한 이들은 헌법 1조1항을 풍자해 ‘대한민국은 도박공화국’이라 부른다.

이 때문에 국가 경제가 몇 년째 불황인데도 유독 도박산업은 호황이다.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불법도박 실태조사’ 결과 2008년 53조원이던 도박 규모가 2012년 95조원으로 급증했다. 매년 10조원씩 규모가 커져 이미 1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법으로 포장됐지만 도박이나 다름없는 사행산업 규모도 매년 성장 중이다. 사감위는 지난해 6월 사행산업 규모가 19조원이라고 발표했다. 10년 전인 2005년엔 11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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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이용객들이 지난 5일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정선=박진호 기자]


도박산업의 급성장이 위험한 이유는 패륜적인 2차 범죄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도박 판돈을 마련하려고 여동생을 죽인 신모(25·충북)씨, 도박 빚 때문에 일가족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박모(46·대구)씨 사건처럼 강력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심각해진 도박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법률안들이 이미 발의됐지만 대부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사행업체 매장에 현금인출기 설치를 금지하는 경륜·경정법 개정안(2012)은 벌써 4년째, 불법스포츠 베팅업체 인터넷 검색 제한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은 2년째 계류 중이다.

전국 곳곳에 도박장과 사행산업이 독버섯처럼 뿌리 내리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카지노 등 도박산업을 유치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세수 대박’ 챙길 궁리를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내국인 전용 1곳을 포함해 카지노는 17곳이 영업 중이라 이미 포화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외자유치를 내세워 2014년에 이어 지난달에도 인천 영종도에 외국인 카지노를 허가했다.

강원랜드 내국인용 카지노를 자주 이용한다는 중견기업 김모(63) 회장은 “도박을 단속해야 할 정부가 도박 풍조를 조장한다”며 “도박 중독을 막으려면 한 달에 15일로 제한된 강원랜드 입장 일수를 한 달에 5일 이내, 연간 60일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락과 레저 수준을 넘어 도박으로 변질되고 있는 경마·경륜·경정은 입장 횟수 제한조차 없다. 도박산업의 ‘위험한 질주’에 이제라도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다.

박진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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