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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한국에선 왜 ‘알파고’가 못 나올까

중앙일보 2016.03.11 00:35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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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경제부문 차장

천재 소리를 듣던 어린 아들의 관심은 체스와 포커였다. 10대 시절은 비디오게임을 만드는 데 빠졌다. 한국의 보통 부모라면 진로를 걱정할 만하다. 그런 아들은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뇌과학으로 박사 학위(런던대)를 받았다. 이세돌 9단과 대결한 알파고를 만든 영국의 인공지능(AI) 업체 딥마인드의 공동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40) 얘기다. 하사비스가 2010년 설립한 스타트업(기술창업기업) 딥마인드는 창업 4년 만에 구글로 넘어간다. 매각 대금은 4억 파운드(약 6800억원). 구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알파고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하사비스의 경력을 보면 한국에선 왜 딥마인드와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다. 하사비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프로게이머가 됐거나 의사가 됐을 공산이 크다. 국내 교육 시스템과 벤처 생태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벤처 업계에선 오래전부터 국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정당한 가격을 주고 인수하기보다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훔치려 한다고 비난해왔다. 대기업 입장에선 국내 스타트업은 비싸기만 할 뿐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수준 높은 스타트업이 나오려면 뛰어난 인재가 창업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미국과 한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고 로보어드바이저업체 AIM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는 이지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선 뛰어난 인재가 모험심을 갖고 창업하는 것을 망설인다. 이는 국내에선 창업을 통해 기회비용을 넘어서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큰 기업으로 성장하거나, 딥마인드처럼 많은 돈을 받고 다른 회사에 매각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이런 기업을 제값에 인수하는 대기업이 늘어나야 한다. 창업으로 돈을 번 벤처기업인이 나와야 이들을 롤모델로 삼는 예비창업자가 늘어난다.

대기업이 다른 업종의 작은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데 대한 부정적 시선도 바꿔야 한다. 이는 ‘문어발’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창업 생태계를 키우는 ‘마중물’이다. 통신 관련 벤처기업을 창업했던 한민규 한성대 융복합과정 교수는 “대기업이 유망한 벤처기업을 우호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특허권을 강화해 스타트업의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파고와의 대국이 한국에서 열린 것은 우리에겐 엄청난 충격이자 기회다. 벌써 AI 분야를 적극 육성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시야를 넓혀 신성장 동력 분야의 스타트업을 효율적으로 키워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젠 실행이 중요하다.

김원배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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