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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금융 야만의 시대’ 연 굿프렌드, 굿바이

중앙일보 2016.03.11 00:01 경제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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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월가의 왕’이라고 불리던 인물이 9일(현지시간) 세상을 떴다. 존 굿프렌드 옛 살로먼브러더스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올해 나이는 86세다. 블룸버그 통신은 “사망 원인은 폐렴”이라고 보도했다.

컴퓨터 트레이딩 도입 막대한 수익
80년대 월가서 최대 연봉 기록

그는 월가의 탐욕시대를 상징한 인물이었다. 그 바람에 금융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가 1980년대 월가를 비소설 방식으로 그린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의 실제 인물이다. 책 속에서 그는 부하이자 나중에 헤지펀드 롱텀캐피털의 설립자인 존 메리웨더와 100만 달러를 걸고 라이어스 포커(거짓말을 할 수 있는 포커게임)를 벌인다.

실제 그의 전성시대인 80년대는 금융 전문가들이 말하는 ‘요란한(roaring) 시대’였다. 그때 신사를 자처하는 투자은행가와 다른 금융종족이 등장했다. 트레이더다. 이들은 금융회사 자체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베팅해 돈을 벌어들인다. 수익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창조해냈다. 마침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온갖 실험이 가능했다. 그 결과 자산담보부증권(ABS) 등 변종증권이 탄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부채권) 사태의 씨앗이 뿌려졌다.

톰슨로이터는 “80년대 트레이더들이 굿프렌드가 이끈 살로먼브러더스를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소개했다. 실제 그와 직간접적인 거래를 한 인물을 보면 화려하다.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롱텀캐피털 사태의 주역인 메리웨더, ‘정크본드 황제’ 마이클 밀켄, 트레이딩의 이론가 겸 미 재무장관인 마이클 루빈, ‘악덕 트레이더’의 상징인 폴 모저 등이다.

굿프렌드는 1978년 살로먼의 CEO가 됐다. 그는 컴퓨터를 활용한 트레이딩을 월가에 도입했다. 또 비공개·비상장 회사인 살로먼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자본을 늘렸다. 이를 트레이딩 자금으로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블룸버그는 “굿프렌드는 80년대 월가에서 최대 연봉을 받는 금융인이었다”고 전했다. 그의 생일 케이크가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의 승객 좌석에 실려 프랑스 파리에서 뉴욕으로 공수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시대를 전문가들은 “월가가 금융 신사도(오랜 관계를 중시하는 금융관행)를 버리고 야만의 시대(단기 수익 지상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평하곤 한다.

굿프렌드의 금융인생은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 의해 1991년 마감됐다. 직전 그의 휘하 트레이더가 미 국채 입찰과정에서 편법을 저질렀다. 톰슨로이터는 “버핏이 마침 살로먼의 지분을 꽤 보유했다”며 “그는 스캔들을 근거로 굿프렌드의 사임을 요구해 관철시켰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금융시장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대 뒤에 머물렀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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