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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판 돈, 퇴직금 수억씩 날린 그들…서울~정선 위험한 질주

중앙일보 2016.03.09 02:15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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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강원랜드를 찾은 사람들이 지난 5일 오전 6시 카지노가 폐장하자 4시간 뒤부터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이날 줄을 선 이용객은 300~400명에 달했다. 카지노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다음 날 오전 6시다. [정선=박진호 기자]


30대 이상 성인들은 카지노·경마·경륜·경정·복권·소싸움 등 레저와 관광문화상품으로 포장된 합법적 공간에서 ‘큰 거 한 방’을 노린다. 주로 인터넷 불법 도박에 빠져 대박 꿈을 꾸는 10~20대와 다르다.

도박에 빠진 대한민국 <중> 카지노에 중독된 중·장년들
동서울 불법 리무진 동행 취재
대기업 임원, 직장인, 중년 여성 ?
밤새 도박하고 새벽에 서울로


서울 동서울터미널은 밤마다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향해 떠나는 이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취재팀이 지난 4일 오후 9시쯤 서울 동서울터미널 대합실로 가봤다. 50대 남성이 행인들에게 “사북! 고한!”을 반복해 외쳤다. 그에게 다가가 “정선까지 얼마 받아요”라고 묻자 “혼자는 15만원, 둘은 8만원, 셋은 6만원”이라고 답했다. 그는 “곧 한 명이 더 올 테니 다른 손님이 오면 같이 출발하자”고 제의했고 50대 여성이 곧 나타났다. 50대 남성은 정선의 강원랜드 카지노로 고객들을 태워 나르는 에쿠스 리무진의 운전기사 A씨(53)였다.

터미널 밖에 주차해 있던 리무진을 타고 가면서 A씨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그는 “10년 전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서울에서 정선 카지노에 가는 사람이 많아 택시기사보다 돈벌이가 훨씬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10회 정도 이용하는 모 대기업 임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A씨에 따르면 항상 자정쯤 출발하는 이 임원은 오전 2시 카지노에 도착해 폐장 시간인 오전 6시까지 VIP실에서 약 4시간 게임을 즐긴다. 하룻밤에 10억원을 딴 적도, 15억을 잃은 적도 있고 돈을 많이 딴 날엔 A씨에게 수고비라며 100만원짜리 칩을 주기도 했다. A씨는 “금요일 퇴근시간엔 직장인이 많이 찾아온다. 오늘 정선으로 간 사람 대부분은 주말 내내 카지노 도박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처럼 서울과 정선을 오가는 차량 운전자는 동서울터미널에만 20~30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약 전화를 받고 서울 전역을 다니는 기사까지 합치면 60명이 넘는다고 한다. 현행법상 일반 차량이 영업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도박을 하기 위해 매일 밤 많은 사람이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운전기사는 카지노로 가는 손님을 ‘강원랜드 출퇴근족’이라 부른다. 정선에서 밤새워 도박을 한 직장인들이 타고 온 차량을 불러 회사나 집으로 직행해서다.

이윽고 동승한 중년 여성이 입을 열었다. 그는 “어제(지난 3일)도 100만원을 잃었다. 남편은 땅 판 돈 2억~3억원을 며칠 만에 날린 적도 있다”며 “젊은 사람이 이런 거(카지노 도박)하면 안 돼”라고 대뜸 충고를 했다.
 

2시간20분 달려 도착한 카지노
빈자리 없어 1시간가량 기다려

오전 6시 폐장 알리자 곳곳 탄식
다음 입장권 받으려 창구로 몰려


오후 11시30분. 출발한 지 2시간20분 만에 도착한 정선 카지노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상당수가 게임기 뒤에 줄을 선 채 순서를 기다렸다. 한 시간가량을 기다려 숫자 등을 맞히는 게임기 앞에 앉았다. 10분 만에 5만원이 손에서 사라졌다. 오전 6시가 되자 폐장을 알리는 안내음이 울렸다. 곳곳에서 아쉬움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백 명의 남녀가 입장권을 샀던 곳으로 몰려 나가 줄을 서길래 의아했다. 왜 줄을 서느냐고 물었더니 한 남성은 “개장 시간이 오전 10시인데 입장권을 지금 받아놔야 일찍 들어가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요즘 최악의 불황이지만 강원도 정선 산골마을에 위치한 강원랜드에는 매일 수천 명이 대박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빈손으로 돌아간다.

경기도 하남에 사는 김모(60대)씨는 카지노에서 노후자금 3억원을 날렸다. 2013년 5월 바카라로 하루 만에 970만원을 딴 것이 화근이 됐다. 더 많은 돈을 따기 위해 베팅금을 200만~300만원으로 늘리자 통장의 돈이 사라졌다. 김씨는 “본전 생각이 나서 계속 베팅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도박의 늪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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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은 카지노만의 문제가 아니다. 렛츠런파크서울·광명스피돔 등 건전한 레포츠 이미지를 강조한 합법 도박에 홀려 은퇴자금을 송두리째 날린 사람이 주변에 흔하다.

3년 전 약 6000만원을 호가하던 개인택시 소유자였던 택시기사 김모(60·서울 은평구)씨. 과천 경마장을 드나들고 서울의 실내 화상 경마장에 출입하는 바람에 개인택시를 날리고 지금은 법인택시를 몰고 있다. 그는 “경마가 합법적이라지만 사행심을 자극하기는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며 “후회하면 늦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진호·최종권·유명한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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