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친이 돈으로 돕는 건 쉬운 일이라 하셨죠”

중앙일보 2016.03.09 01:00 종합 23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중견 에너지기업인 (주)정화의 이영수(65·사진) 대표는 자원봉사 활동가들 사이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봉사자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온 때문이다. 그는 항공료나 체류비용 때문에 해외 의료봉사 계획 등이 벽에 부닥치면 사재를 쾌척한다. 봉사 현장의 식대나 약품 구입비까지 선뜻 떠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17년째 해외 의료봉사 이영수 대표
고 이종엽 경일석유 회장 막내딸
30대에 죽음 넘나들며 나눔에 눈떠

이 대표는 단순 후원에만 그치지 않고 봉사활동에도 직접 참여한다. 지난 2000년 몽골을 시작으로 주로 해외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를 벌인 지 올해로 17년째다. 올해도 1월 초 베트남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지난달엔 필리핀에서 활동했다. 올해 생일은 봉사현장에서 보냈다. 아이티 지진 현장과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 ‘벌레 천국’으로 불리는 스리랑카, 6·25 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태국 등 그가 봉사활동을 한 나라만 10여 개 국에 이른다.
 
기사 이미지

이영수 대표가 지난 1월 베트남 꾸이년시 떠빈면 보건소에서 환자의 체온을 재고있다. [중앙포토]


이 대표가 소외된 이들에게 눈길을 돌린 건 30대 후반에 큰 불행을 겪으면서다. 그는 “결혼 11년 만인 1989년 남편과 사별했고, 곧바로 췌장 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아 회복에만 2년이 넘게 걸리는 시련이 닥쳤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간절함을 절감했다고 한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향한 곳이 의료봉사기관인 열린의사회였다. 이 대표는 “새로 허락된 삶이란 생각에 무작정 해외 오지로 달려갔고 풍토병이나 병해충, 테러위협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게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복한 성장과정을 거친 ‘금수저’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석유업계 거물인 고(故) 이종엽 경일석유 회장의 8남매 중 막내딸이다. 60년대 기사 딸린 일제 자가용을 타고 초·중·고를 다녔다고 한다. 광산개발과 석유 유통으로 큰 돈을 번 선친은 늘 “돈으로 남을 돕는 건 쉬운 일”이라며 땀흘려 봉사하는 삶을 가르쳤다. 동생인 이영호 경일석유 회장을 비롯한 형제들이 수십억원 대의 기부를 해온 것도 이를 따르려는 취지란 설명이다. 지난해 8월 작고한 이 대표의 어머니 김용칠 여사도 생전에 서울대병원에 10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여성위원장을 지낸 이 대표는 통일교육과 탈북자 지원 활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탈북 여성과 학생들이 직장과 학교에서 북한 사투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없애주려 한 차례에 300만원이 드는 말씨 교정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한 주민을 찾아가는 의료지원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바로알기 위한 통일교육도 후원할 생각이다.

이 대표는 “대학 특강에서 만난 청년·대학생들이 ‘가진 자만이 독식하는 사회’에 대한 울분과 좌절을 얘기할 때 마음이 아프다”며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영종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yjl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