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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를 위해 싸워 주세요!”

중앙일보 2016.03.09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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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국제경제팀장

표는 권력을 만든다. 새 대통령이 탄생하고, 국회의원이 등장한다. 백성, 곧 유권자는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의 여운은 짧다. 유권자가 심혈을 기울여 뽑은 선량(選良)들은 소인배로 전락한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려 갈등과 대립으로 날을 지새운다. 다음 선거는 권력을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죽기살기식 싸움으로 변질한다.

정치 구조가 비생산적일수록 냉소주의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공공선택학파라고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은 이런 정치 현상을 경제적 관점에서 연구했다. 왜 정치는 실망스럽나. 왜 소인배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는가.

이들이 낸 가설이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다. 표를 잘 던지려면 후보자의 능력을 살피고, 공약이 실천 가능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한 표를 위해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무엇인가. 공공선택학파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여긴다. 한 표 찍는다고 당장 내 손에 들어오는 건 없다. 오히려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 꼴이다. 이럴 바에야 정치나 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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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치인을 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정책을 수립하고 법을 만드는 정치인도 기업가나 상인과 마찬가지로 사적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 공익(公益)은 없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등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구조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깊어지는 이유다.

공공선택이론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튄다. ‘정치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하라.’ 시장에서는 빵가게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빵을 만들지만 이게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된다. 정치의 장에서는 다르다.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면 세금 낭비 등 사회적으로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니 정치에도 시장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투표권을 사고팔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한다. 투표권을 파는 사람은 이익이 생겨 좋고, 사는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당선시켜 좋다.

이 이론, 설득력은 있지만 해법이 비현실적이다. 이들도 투표권을 사고파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다만 투표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해법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좋은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이게 궁극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이끌고 내 이익도 끌어올린다. 유권자는 사익(私益)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20대 총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번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야권이 인구구조적으로 절대 불리하다는 점이다. 연령별 선거인 수로 봤을 때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는 더 가팔라졌다.

통계청이 추산한 올해 인구구조를 보자.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30대는 48만 명이, 40대는 13만 명이 감소했다. 20대만 거의 차이가 없다. 반면에 50대 인구는 822만 명으로 4년 전에 비해 80만 명 증가했다. 60대는 93만 명, 70대 이상은 66만 명 늘었다. 그동안 연령별 투표성향을 봤을 때 중장년층 이상은 여당 후보를 선호한 게 뚜렷했다. 야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행으로 되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인물과 정책에서 우위를 보이지 못하면 야당의 참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야당은 각성하고 있는지. 4년마다 유권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등장하는 ‘그때 그 사람들’에 신물 난다.

2011년 8월 찌는 듯한 여름. 하버드대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 시내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 워런 교수는 파산법 전문가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설립하도록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모임에서 ‘중산층이 왜 파산하는지’에 대해 강연했다.

그의 운명은 강연이 끝난 뒤 바뀌었다. 그가 자리를 뜰 무렵 더위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익고, 머리가 헝클어진 50대 여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차가 없어 3.2㎞를 걸어왔어요. 일자리를 잃고 희망이 없어요. 날 위해 싸워 주세요. 그게 얼마나 힘들지는 상관없어요.” 11월에 있을 상원의원 선거에 나가 달라는 호소였다.

당시 주 상원의원은 스콧 브라운이었다. 그는 1년 전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전(前) 주검찰총장을 꺾고 당선된 공화당 내 최고 유망주였다.

50대 여성의 한마디에 워런 교수는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절대 불리한 여건 속에서 그는 싸워 이겼다. 워런은 현재 민주당 내에서 중산층 살리기를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뛰는 의원으로 꼽힌다. (『싸울 기회』 엘리자베스 워런)

한국 경제는 장기침체를 면하지 못할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나를 위해 싸워 달라”고 부탁할 후보가 있을까. 오히려 “이제 그만하세요”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후보가 대부분 아닐까. 공공선택이론가들의 주장대로 유권자들은 정치에 관심을 끊고 사는 게 현명한 결정인지도 모른다. 뼈를 깎는 혁신이 없는 당은 선거에서 외면받는다. ‘정치 불신’이라는 바이러스가 퍼지면 민주주의의 숨이 막힌다.

김종윤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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