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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김정은 대 7500만의 대결

중앙일보 2016.03.09 00:30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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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논설위원

장기 독재정권은 길어야 70년을 넘기 어렵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42년 만에 민중에게 살해됐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56년 만에 미국에 두 손을 들었다. 공산주의 소련은 69년 만인 1991년 붕괴됐다.

한반도에 김일성이 등장한 지 올해로 71년이다. 드디어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 봉쇄에 들어갔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 군사훈련이 시작됐다. 한·미 특수부대는 김정은을 노리는 참수(斬首)작전을 연습한다고 한다.

김정은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발톱을 휘두른다. 핵미사일을 언제든지 쏠 수 있다고 협박한다. 실전 배치가 사실이라면 장거리보다는 중거리 미사일일 공산이 크다. 장거리는 탄두를 500㎏ 이하로 줄여야 한다. 고난도 기술이다. 반면 중거리 스커드는 1t 정도면 된다.

스커드는 표적이 미국이 아니라 남한이다. 그런데도 남한은 태평하다. 정말로 핵탄두가 장착됐는지 사회 전반이 별로 관심이 없다. 김무성·김종인·안철수는 아무 얘기가 없다. 이 나라가 어떤 대가를 치르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불안한 정적(靜寂)이요, 공포스러운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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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미사일을 배치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전문가 다수는 북한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아직은 실전 배치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렇다고 별로 나아지는 건 없다. 실전 핵무장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핵미사일이 배치되면 한국의 안보환경은 뿌리째 흔들린다. 남한은 핵 공격이 임박하면 사전에 치겠다고 한다. 킬 체인(kill chain) 전략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동식 발사대를 무슨 수로 다 부술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100% 막을 수도 없다. 사드는 완전하지 않다. 남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미국의 전술 핵을 다시 들여와도 마찬가지다. 북한 공산정권은 비(非)이성적 집단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자폭(自爆)이 가능하다. 결국 핵이 있든 없든 서울은 제2의 히로시마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배치하면 남한은 핵 인질이 된다. 그전까지 ‘한계(限界) 시간’이 남았다. 이스라엘이라면 그 시간에 뭘 할까. 그들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원자로를 부쉈다. 이란엔 부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한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강력한 압박을 택했다. 박근혜 정권은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다.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독자제재를 강화했다. 놀라운 건 제1야당이 동참하는 것이다. 야당은 북한인권법에 동의했다. 나아가 김종인 대표는 북한 정권 궤멸과 통일을 천명했다. 물론 야당의 주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그렇다 해도 김종인의 개척(開拓)은 야당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될 수 있다.

국가의 자존을 위해 남한은 힘든 여정을 시작했다. 어려운 행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단결이다. 그런데 여전히 남한은 갈라져 있다. 대표적인 게 북한 급변에 대한 우려다. 적잖은 이가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이 붕괴할 걸로 걱정한다. 그러나 정권 붕괴와 국가 붕괴는 다르다. 독재 정권이 바뀐다고 나라가 무너지진 않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 정권이 붕괴됐다. 그러나 동독은 건재했다. 새 정권은 서독과 협력해 독일 통일을 이뤘다. 비공산 독재도 마찬가지다. 후세인이나 카다피가 죽었다고 이라크나 리비아가 무너지진 않았다.

김씨 3대 왕조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주민을 탄압했다. 평양을 유지하려 지방을 굶겼다. 충성파를 먹이려고 일반 주민에겐 배급을 줄였다. 1년에 1억 달러면 북한엔 굶는 이가 없다. 그런데 정권은 수십억 달러를 핵과 미사일에 쏟아부었다.

그러므로 김정은은 북한이 아니다. 북한 주민이 북한이다. 남한은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결국 한반도의 갈등은 김정은 대(對) 7500만의 대결이다.

언젠가 김정은이 아웃(out)되면 새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누가 되든 새 정권은 개인 숭배와 절대부패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게 햇볕정책이다. 남한은 식량과 에너지를 집중 지원해 북한 사회의 혼란을 막고 새 정권을 도와주어야 한다. 새 정권을 설득해서 독일식 통일의 길로 나서야 한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면 그가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역사는 북한의 새 정권과 만들어 가야 할 공산이 크다. 그 정권과는 독일처럼 7500만 자유민주 통일 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신이 주재하는 한반도 드라마의 플롯(plot) 아닐까.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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