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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입바른 조언 들으면 착잡해…나 ‘답정너’일까요

중앙일보 2016.03.08 03:01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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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원하는 답 못 들어서 이런 걸까) 20대 후반 미혼 여성입니다.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민이 있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나면 괜히 말한 것 같아 후회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최근 진로 관련 고민 때문에 그 분야를 잘 알고 있는 분에게 제 고민을 얘기했는데, 맞는 말씀을 해주시긴 했는데 대화를 끝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착잡하고 괜히 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도 기분 나빴고, 이래저래 마음이 더 심란해졌습니다. 친구 문제를 다른 친구에게 얘기했다가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친구 뒷담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운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혼자서 고민해보고 혼자 결정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마음이 찜찜합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얘기하자니 또 후회할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혹시 내가 ‘답정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말이죠.

고민 털어놓기 힘들다는 20대 여성


A (공감받고 싶은 맘은 다 같아요) 역술가가 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미래를 잘 예측하는 능력보다 찾아온 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사연의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이라 합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 말에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답을 잘 파악해서 해줄 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며 대화를 나눌 때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과 함께 공감이나 정서적 지지를 받고 싶은 욕구가 같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경우엔 정확한 정보나 판단보다 공감이나 정서적 지지가 주된 목적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부부간의 대화에서 ‘날씨도 춥고 나이도 들어가니 내 피부 많이 상했지’라고 아내가 남편에게 물어올 때 남편들이 두 눈 꾹 감고 해야 하는 정답은 ‘아니, 처녀 때처럼 훌륭해’입니다. 이때 ‘정말이야?’라고 아내가 되묻는다면 ‘정말이야. 좋은 피부 계속 유지하게 피부 관리 잘 받아요’까지 하면 완벽한 ‘답정너’의 완성입니다. 거짓말이라도 아내를 기분 좋게 만드는 하얀 거짓말인 셈이죠. 이렇게 상대방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는 객관적인 해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공감을 받고 싶어서 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말 해도 통하는 친구가 필요해

왜 우리는 속마음을 상대방과 나누고 싶어할까요. 그건 정서적 공감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왜 공감을 받고 싶어할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감받을 때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이 차 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외로움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에 대한 정체성이 희박해질 때 찾아옵니다. 이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나를 공감해주는 관계가 없다면 내 가치를 느끼는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고 외로움도 찾아옵니다. 극단적으로 흐르다 보면 삶을 마감하려는 행동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의 전화 들어 보셨을 겁니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한 통의 공감 대화가 마음을 다시 사는 쪽으로 돌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1분의 공감 대화가 내 자신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대화를 할 때 답정너의 심리가 내 마음에 있는 건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공감이라는 소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으니깐요. 행복감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속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하는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오늘 사연처럼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질문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요. 정답은 속마음을 털어놓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런 친구가 존재하느냐에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한두 명 정도는 만들기 쉬울 것 같고, 내 주변에도 있는 것 같은데, 막상 깊은 고민이 생겨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 한 명이 없어 속상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이야기 했더니 반응이 내가 원하는 정답과는 딴판이라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깊은 공감 관계를 타인과 만드는 것이 실제로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한쪽에서만 들어주는 관계 오래가지 못해

답정너란 말에는 공감받고 싶은 사람의 욕구가 담겨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 열심히 하는 직원보다 상사에게 듣기 좋은 말 잘하는 직원이 더 사랑받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객관적으로는 그래선 안 되지만 사람 마음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내가 원하는 말만 하는 그 사람에게 일단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근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것을 이기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균형 잡힌 리더십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기분이 좋아진다고 답정너 직원만 좋아하다 보면 결국 본인에게도 해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장 믿던 부하 직원에게 배신당했다’라며 속상해하는 상사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맞추어 모든 걸 믿고 권한을 위임했는데 뒤통수를 맞는 것이죠.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을 잘 공감해 주던 부하 직원이 자신에게 분노라는 공격 행동을 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공감이라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어려운 심리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상사는 자신을 잘 공감해주는 부하 직원이 좋습니다. 그래서 칭찬이나 임금 인상 등 나름대로 심리적 경제적 보상도 줍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 자기가 소중하기에 계산을 하다 보면 차이가 날 때가 많습니다. 상사는 충분히 보상했다고 생각하는데, 부하 직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쓰는 감정적인 에너지에 비해 부족하다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이럴 때 울화가 쌓이게 됩니다. 사람은 내가 마음을 준 만큼 상대방에게 받지 못하면 섭섭함이 생기고 이것은 마음에 울화로 쌓이게 됩니다. 그것이 행동화되는 것이 분노 공격 반응이죠.

그래서 어떤 관계든 서로 공감을 잘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감정 에너지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유지되는 공감 관계를 보면 서로가 내가 좀 더 희생하고 더 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생각보다 더 마음을 주어야 그 사람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죠. 그런데 ‘네가 나를 공감하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이다’ 내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면 에너지 균형이 깨지고 언젠가는 상대방이 결핍을 느끼게 되기 쉽습니다.

따뜻한 공감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선 괜찮은 사람과 마음을 충분히 주고 또 충분히 받는 상호 관계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터놓을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도 그 사람의 마음을 들어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내가 원할 때 나를 공감해 달라는 식의 접근은 길게 공감 관계를 유지해 주지 못합니다. 약간은 손해 보듯 마음을 더 주려는 그런 괜찮은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짙은 공감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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