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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삼진 없이는 홈런도 없다, 만루포 날린 박병호

중앙일보 2016.03.08 00:45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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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의 박병호가 7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샬럿에서 열린 탬파베이와의 시범경기에서 6번타자로 나서 1회 만루홈런을 터뜨리고 있다. 박병호는 지난 3일 첫 경기 세 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한 이후 빠른 볼카운트에서 타격을 하고 있다. [포트샬럿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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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0.343, 타점 146개, 홈런 53개, 볼넷 78개, 삼진 161개. 올해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박병호(30·미네소타)가 지난해 KBO리그에서 기록한 성적이다.

시범경기 첫 날 3K, 자존심에 상처
다음날 초구만 노려치며 조바심

타율 0.326, 타점 135개, 홈런 28개, 볼넷 32개. 삼진 127개. 이건 나성범(27·NC)의 지난해 기록이다. 두 선수에겐 공통된 약점이 있다. 삼진이 많고 볼넷은 적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성범은 지난해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에서 박병호를 만났을 때 물었다.

“형, 삼진이 많아 고민인데 어쩌죠?”

더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홈런을 더 많이 때리는 것보다 삼진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나성범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비슷한 스타일의 선배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삼진을 당하지 않을 순 없어. 삼진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승부를 주도해야 해.”

단점(삼진)을 보완하려다 자칫 장점(홈런)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게 박병호가 나성범에게 해준 충고였다. 박병호의 말에는 ▶슬러거라면 삼진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상대가 겁낼 정도로 자신있게 스윙해야 한다 ▶대신 어이없는 공에 배트가 나가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데이터에서 보듯 박병호는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자다. LG 유망주 시절부터 3타수당 1개 꼴로 삼진을 기록했다. 넥센 이적 후 첫 홈런왕(31개)에 올랐던 2012년엔 삼진이 111개였고, 볼넷이 73개였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홈런·타점왕에 오르면서도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홈런과 타율이 함께 상승했다. 삼진을 겁낸 나머지 스윙을 줄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2015년 박병호는 홈런 1위, 삼진도 1위였다. MLB가 타자를 평가할 때 중요한 지표로 삼는 볼넷/삼진 비율이 0.48(KBO리그 40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네소타는 박병호의 스윙 궤적과, 타구 스피드, 홈런 비거리 등을 근거로 그를 영입했다. 김현수(28·볼티모어)와는 스카우트 기준이 전혀 다른 것이다. 김현수는 지난해 두산에서 뛰며 볼넷/삼진 비율에서 KBO리그 1위(1.60)였다.
 
금융상품으로 비유하면 박병호는 고위험 고수익형 상품이다. 대박(홈런)을 터뜨리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만년 유망주 시절 박병호가 수백 개의 삼진을 당하며 찾은 답이 그거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미네소타 캠프에서 만난 박병호는 “홈런 몇 개를 치겠다는 목표를 세우진 않았다. 그러나 강한 타구를 날리는 것이 내 역할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실패(삼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스윙을 하는 것, 박병호는 MLB에 데뷔하기 전에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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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선수들의 머리를 도맡아 깎는 이발사 앤디 페이드가 박병호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공개했다. 박병호의 머리를 처음으로 잘라준 페이드는 “머리를 깎는 장소는 화장실일 때도 있고, 창고일 때도 있다”고 했다. 페이드에게 머리를 맡긴 조 마우어, 어빈 산타나, 케니 바르가스, 리키 놀라스코, 브라이언 도저(이상 미네소타)와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왼쪽부터). [사진 앤디 페이드 SNS]


박병호는 지난 3일 시범경기에 처음 나서 3타석 3삼진을 당했다. MLB 투수들의 피칭을 보려다가 완벽하게 당했다. 이튿날엔 첫 타석부터 초구를 받아쳐 안타를 때린 뒤 남은 두 타석에서도 초구를 건드려 범타로 물러났다. 6일에도 두 타석 모두 2구째를 공략했다가 범타에 그쳤다. 그리고 7일 탬파베이전 1회 3구째를 받아쳐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최고의 선수들은 각자 장점과 개성을 갖고 있다. 류현진(29·LA 다저스)이 2013년 MLB에 진출했을 때는 직구-체인지업의 단조로운 조합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강정호(29·피츠버그)는 레그킥(이동발을 높이 드는 타격폼)이 논란을 일으켰다. 둘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무기로 싸웠다. 직접 부딪혀 본 뒤에 전략을 일부 수정했을 뿐이다. 단점을 인정하고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반면 김현수는 7일까지 시범경기 16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다. “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어린아이 같다”는 그의 말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읽힌다.

첫 경기에서 완패했던 박병호는 재빠르게 국면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홈런이 나오기 전 5타석에서 2구 이내에 타격을 끝낸 건 양면성을 갖고 있다. 적극적인 타격으로 볼 수 있겠지만, 삼진을 두려워해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도 든다. 갈 길이 아직 멀다. 박병호가 나성범에게 했던 충고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 삼진 없이는 홈런도 없다. 실패 없이는 성공도 없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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