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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연주의 개척자, 아르농쿠르 별세

중앙일보 2016.03.0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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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6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작년 12월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며 은퇴를 표명한 지 석 달 만이었다.

아르농쿠르는 원전연주계 최초의 스타였다. 새로운 연주양식을 개척하고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모차르트 해석가였다. 바흐를 재발견했고, 몬테베르디를 되살렸다. 정확한 시대 고증에 따라 연주한 옛 음악은 현대적으로 변모했다. 고전과 낭만음악은 옛 음악의 순수함을 되찾았다.

아르농쿠르는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로렌 지방에 걸친 귀족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음악가 지망생이었지만 기술공무원을 택했다. 어머니는 레오폴트 2세의 13번째 자손인 합스부르크 요한 대공의 증손녀였다.

1929년 12월 6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아르농쿠르는 빈에서 자라났다. 전공 악기는 첼로였다. 빈 국립음악원 졸업 후 1952년부터 17년 동안 빈 심포니에서 첼로 단원으로 활동했다. 시대악기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비올라 다 감바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아르농쿠르는 푸르트뱅글러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듣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다.

아르농쿠르는 1953년 그의 아내 알리스와 함께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를 창단했다. 1967년 창단한 데이비드 먼로의 ‘얼리 뮤직 콘소트’ 보다 14년이나 빨랐던, 선구적인 앙상블이었다.
아르농쿠르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는 1954년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연주했다. 1971년부터는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연주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공동으로 작업한 바흐 칸타타 녹음(텔덱)은 음반 역사에 빛나는 업적으로 남았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는 점차 활동 범위를 넓혀 바로크뿐 아니라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까지 해석했다.

아르농쿠르는 오페라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71년 테어터 안 데어 빈에서 ‘율리시즈의 귀환’으로 포문을 열고 몬테베르디 오페라를 해석했다. 취리히 오페라에서는 명 연출가 장ㆍ피에르 포넬과 손잡고 모차르트 오페라로 각광받았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필두로 빈 필, 베를린 필, 유럽 체임버와 함께한 그의 관현악 실황은 음반에 담겨 명반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발매된 베토벤 교향곡 4번과 5번 ‘운명’(소니)은 작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의 연주다. 아르농쿠르는 해설지에서 “운명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혁명적 음악”이라고 주장하며 여전히 젊은 호기심과 열정을 노출했다.

아르농쿠르는 2006년 예술의전당에서 빈 콘첸쿠스 무지쿠스, 쇤베르크 합창단과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내한공연을 가졌다. 당시 공연을 성사시킨 강해근 한양대 명예교수(당시 한양대 음악연구소장)는 아르농쿠르의 저서 ‘바로크 음악은 ’말‘한다’(음악세계)의 역자이기도 하다. 강 명예교수는 “당시 아르농쿠르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주변의 사람을 압도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함께 온 외과의사인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버지가 음악 밖에 관심이 없다며, 당신이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연주 양식 면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다. 큰 별이 졌다”고 말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사진 소니 클래시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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