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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범죄로 끝맺었다, 끈끈했던 ‘가출팸’ 한 달

중앙일보 2016.03.07 02:30 종합 12면 지면보기
채 5평(약 16.5㎡)도 안 되는 서울 신림동 고시텔은 지난달 초부터 나의 보금자리가 됐다. 전혀 얼굴도 모르던 지웅(30·가명) 오빠, 동갑내기 재호(19·가명), 동생 지섭(18·가명)·세호(17·가명)와 함께 ‘가출팸(가출+패밀리의 준말·가출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가족처럼 생활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으로 만나면서다.

공동생활은 늘 버거웠다. 그나마 덩치가 좀 있는 남자애가 번갈아 일용직 막일을 해 몇 만원씩 벌어 오면 그걸로 5명이 끼니를 때웠다. 비좁은 방에서 성별 구분은 무의미했다. 우리는 새우처럼 구겨져 잤다. 그래도 집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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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양 등 5명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 16.5㎡도 안 되는 고시텔에서 오누이처럼 지냈다.

다섯 살 때 엄마·아빠가 남남으로 갈라선 뒤 나는 쭉 아빠와 살았다. 아빠는 유난히 간섭이 심했다. 내가 어울리는 친구들도 싫어했다. 반항심이 커졌다. 중학생 때부터 밥 먹듯이 집을 나갔다.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그러자 아빠는 날 방에 가둬 놓고 외출을 금지시켰다. 집은 감옥처럼 내 숨을 막았다. 지난 1월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난 탈출(?)했다.

한동안 친구 집과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인터넷 가출 카페에 재호와 세호가 올린 글을 봤다. 3개월 전부터 신림동 고시텔에 방을 잡아 살고 있는데 동숙자들이 나가 새로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알려 준 번호로 연락한 뒤 패밀리에 합류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지웅 오빠는 10~20대를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보냈다고 했다. 주로 폭행 혐의. 변변한 직장 한 번 못 다녔다. 오빠는 “가끔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하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막내 세호의 부모는 일곱 살 때 이혼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이 심했던 세호의 아버지는 자살까지 시도했다. 세호는 “노숙을 하더라도 집에선 살고 싶지 않다”며 중학생 때 집을 나왔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다. 하지만 우리들의 집은 늘 추웠다. 오히려 가짜 가족이 더 나았다. 가출팸 멤버들과 1000원짜리 몇 장 손에 들고 우르르 오락실이나 당구장에 놀러 갔다. 먼저 자는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하며 장난도 쳤다. 설날에는 쌈짓돈을 모아 같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때로는 밤새워 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놨다. 집에는 종종 동생에게만 ‘잘 지낸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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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돈’이었다. 가끔 남자애들이 이삿짐센터 같은 곳에서 일한 뒤 일당을 받아 왔지만 일감은 드물었다. 생활비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막내 세호가 먼저 입을 뗐다.
 
조건 사기라고 들어봤어?”

세호의 설명은 이랬다. 스마트폰 채팅 앱에 ‘조건만남’ 글을 올려 남자를 유인한 뒤 성관계를 맺는다. ‘지인들에게 알린다’고 협박해 성매수 남성에게서 돈을 뜯어낸다는 거였다. 다들 유일한 여자인 내 얼굴을 살폈다. 겁이 났지만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되뇌었다.
 
나만 희생하면 된다. 나만… 한 번만….”

지난달 18일 우린 채팅 앱으로 접촉한 A씨(41)를 신림동의 한 모텔로 불러냈다. A씨는 집에 애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잠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뒤 친구들에게 문자로 신호를 보냈다.

지웅 오빠와 다른 애들이 모텔방에 들이닥쳤다. 옷을 입고 있던 A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 지금 내 여동생을 건드린 거냐. 가만두지 않겠다”며 지웅 오빠가 운을 뗐다. 네 사람은 손과 발로 A씨를 여러 차례 폭행한 뒤 모텔 밖으로 끌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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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남을 미끼로 A씨를 유인한 뒤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90만원을 뜯어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A씨를 데리고 가 “이대로 도망치면 가족들한테 성매매한 사실을 다 알리겠다”며 협박했다. 그 말에 A씨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결국 A씨에게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90만원을 받아냈다. 이대로라면 우리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금세 덜미가 잡혔다. 경찰 아저씨들은 우리와 살기 전에 온라인 중고 거래 사기를 친 지웅 오빠를 쫓고 있었다. 고시텔에 있던 오빠는 지난달 19일 체포됐다. 오빠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던 경찰 아저씨의 시선이 카카오톡 문자메시지에 꽂혔다. 우리가 A씨를 상대로 범행을 할 때 주고받은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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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팸 일당이 지난달 18일 오전 2시쯤 A씨를 외진 골목으로 끌고 가 협박하는 장면.

다음날 경찰이 고시텔로 들이닥쳤다. 우리의 팔엔 나란히 수갑이 채워졌다. 생전 차 볼 거라 생각도 못해 본 철제 수갑. 모든 상황이 다 장난 같았다. 경찰 아저씨에게 혼이 나고야 실제 상황이란 게 실감 났다. 범행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으나 이미 물사발은 엎어진 뒤였다.

우리처럼 집 밖을 떠도는 가출 청소년은 연간 39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중 20만 명 이상이 소재 파악도 되지 않는다. 

나를 조사한 경찰 아저씨는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경찰에 집계된 가출 청소년 범죄가 16만 건이 넘어. 너희 같은 애들이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범죄의 유혹에 빠져 경찰에 붙잡혀 들어오는 거지”라고 말했다.

처벌을 받고 나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제과제빵을 배울 생각이다. 지웅 오빠는 인생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가출팸’.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곳에서 난 간접적으로나마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 문제는 나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다 범죄로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진짜 가족이 사는 집에 나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서울 서대문경찰서 사이버팀과 김모(30)씨, 허모(19)양, 이모(17)군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허양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경찰은 허양 등 5명을 성매매·특수강도·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했습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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