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샌더스 현상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의 표현

중앙일보 2016.03.07 00:48 종합 33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미국 12개 주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동시에 실시된 ‘수퍼 화요일(Super Tuesday)’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8개 주에서 승리했다.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4개 주에서만 이겼다. 샌더스에게는 1%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매사추세츠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러나 수퍼 화요일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조기에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해 샌더스는 필생의 소신인 미국 경제·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를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조직도 돈도 없고, 지명도도 낮았다. 더욱이 민주당이 아닌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샌더스가 일찍이 대세론을 형성한 힐러리의 대항마로 부상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첫 경선인 아이오와 당원대회(Caucus)에서 사실상 힐러리와 무승부를, 그리고 이어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Primary)에서는 22%포인트 차이로 대승을 거두면서 샌더스는 미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됐다. 비록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지 못하더라도 샌더스에게 쏠리는 이런 관심은 가히 ‘샌더스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사 이미지
샌더스의 공식 선거운동 웹사이트(go.berniesanders.com)는 “주당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빈곤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어서 화면 하단에 선거자금 기부금은 자신의 돈이어야 하며 제3자나 기관을 대신해 기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샌더스의 메시지가 경제적 불평등과 금권정치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2012년에 출간된 『The Price of Inequality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1980년 이후 발생하는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부자들 중에서도 가장 부자들은 더욱더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 가난해지고 또 더 많아지고,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으며, 중산층과 (상위 1%의) 진정한 부자들과의 소득 격차는 증가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적 분열이 심화되고 미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가 책에서 제시한 관련 통계치는 바로 대다수 미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샌더스 현상의 밑거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돌풍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돌풍과 샌더스 현상의 차이점은 이와 같은 경제적·사회적 문제의 원인에 대한 처방과 대책에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제3자들에게 트럼프의 정책 대안은 대중영합적 선동으로 보인다. 반면에 샌더스가 제시하는 개혁이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음을 경쟁자인 힐러리조차 부인하지 않는다. 힐러리가 샌더스를 공격하는 포인트는 샌더스의 약속이 과연 기득권의 한계를 넘어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있을 뿐이다.

샌더스와 스티글리츠는 미국의 상위 1%가 정치와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이 사회에 기여한 대가보다 훨씬 큰 지대(rent)를 추구하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상위 1%가 미국 정치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2000년대 이후 미국 법원의 일련의 판결로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수퍼팩(Super PAC)이다. 즉 수퍼팩이라는 위원회를 통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은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선거자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정치와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샌더스 현상이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일시적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20세기 초 진보적 운동이나 뉴딜정책과 같은 사회적 운동으로 또 구체적 정책으로 발전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샌더스 현상이 미국민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보게 만들고, 경쟁자인 힐러리조차도 샌더스 현상으로 표출된 국민의 요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부응하도록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샌더스 현상이 미국을 넘어 국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경제력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리도 직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에 제대로 된 답을 제시하지 못해 생기는 갈증이 샌더스 현상에 대한 동경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