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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학가의 ‘래트 레이스’

중앙일보 2016.03.07 00:45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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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하나의 미로가 있다. 미로가 시작하는 곳(입구)에는 수많은 굶주린 쥐가 몰려 있다. 미로가 끝나는 곳(출구)에 치즈 한 조각을 놓는다. 입구를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쥐떼는 치즈를 먼저 차지하려고 미친 듯이 미로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이 와중에 서로 밟고 부딪히며 다치는 일이 속출한다. 결국 동작 빠른 한 마리가 치즈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쥐는 굶주림과 상처로 지쳐 쓰러진다. 이는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도시인의 고단한 삶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래트 레이스(rat race·쥐 경주)’는 성공을 위해 과도하게 벌이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요즘 대학가에서도 래트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다. 주최자는 교육부, 경주 이름은 ‘프라임(PRIME·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 참가자는 전국의 대학이다. 교육부는 대규모 정원 조정을 하는 대학을 뽑아 올해부터 3년간 매년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산업 수요와 대학 정원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2024년까지 공학·의학 분야는 21만9000명이 부족하고, 인문·사회 분야는 31만8000명 초과 공급이 예상된다는 한국고용정보원의 전망이 주요 근거다. 선정된 대학은 한 해 30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대학가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대학 지원 사업’으로 불린다.

무려 100여 개 대학이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앞다퉈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모든 초점은 공대 정원을 늘리고 인문·사회를 줄이는 데 맞춰져 있다. 공대가 없던 여대는 공대 신설을 추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가는 벌집 쑤신 듯 뒤숭숭하다. 예체능과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의 무덤이 되고 있어서다. 중앙대는 이공계를 늘리고 인문·예술계를 대폭 줄이려다가 반발에 부닥쳐 총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신라대는 공대를 늘리기 위해 무용과 폐지를 추진했다가 지역 예술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문·사학·교육 부문 정원을 대폭 줄이려 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가 효율과 속도를 강조하다 보면 래트 레이스를 조장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래트 레이스의 치명적인 독은 획일화다. 취업이란 하나의 잣대로 모든 대학을 줄 세우다 보면 ‘공대가 강한 대학’ ‘법대가 강한 대학’ ‘사범대가 강한 대학’ ‘예술대가 강한 대학’ 등 대학 나름의 특성은 사라지고 만다.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투자회사(IB) 골드먼삭스는 신입 직원을 뽑을 때 경영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역사·문학·수학·공학 전공자까지 뽑는다. 최고의 인재라 해도 비슷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 모인 조직엔 사고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혁신과 창의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한국 교육은 다양성을 꽃피울 준비가 돼 있는가. 선택은 정부보다 시장(학생의 수요)이 더 잘한다.

김창규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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