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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배우 박보검과의 10분

중앙일보 2016.03.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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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스타다.

차기 작품은 무엇인지, 그가 입은 옷과 신발은 무엇인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뉴스가 될 정도다.

심지어 지난주엔 ‘박보검 파산’이란 뉴스가 신문·방송·포털 등 온갖 매체의 화제가 되었다.

지난달 초, 그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그를 만나고 사진을 찍는 일’ 그 자체가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건 ‘라운드 인터뷰’란 형식으로 만나고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2월 4일 12시, 삼청동 카페, ‘라운드 인터뷰’, 배우 박보검의 인터뷰 일정을 통보하며 취재기자가 내게 전달한 내용이다.

그리고 ‘라운드 인터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라운드 인터뷰’란 용어, 독자들에겐 생소할 터다.

이는 한 배우를 두고 여러 언론매체가 한꺼번에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 취재형태를 이르는 용어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몇 해 전부터 새롭게 등장한 취재 방식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가 많을 경우, 미니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된다.
백여 개 이상의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하고 배우의 몸은 하나이니 고육지책으로 생겨난 방식이다.

보통 카페를 통째로 빌려 하루 내지는 이틀간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 번에 다섯 매체 안팎, 인터뷰 시간은 대개 50분, 사진 촬영은 10분 정도가 기본이다.
그리고 통상 기사를 게재하는 시간을 정해두기도 한다.
제일 먼저 인터뷰한 매체와 제일 나중에 인터뷰한 매체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그렇게 한다.

배우가 유명세를 탈수록 라운드 인터뷰에 참가하는 매체와 횟수가 많아진다.
‘라운드 인터뷰’의 대상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대세라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박보검 라운드 인터뷰', 아마 그에게도 첫 경험이었을 터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미 그가 대세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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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취재기자가 사진기자에게 인터뷰를 통보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내게 그리 말한 건 나의 사진촬영 성향을 잘 알기에 한 말이었다.

나는 ‘라운드 인터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선 인터뷰 내용을 듣지 못하기에 배우가 세상에 전할 메시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인터뷰 전에 사진을 미리 찍는 관행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여럿이 함께하기에 마치 사진촬영대회가 되기 십상이다.
사진에 찍을 때 고려해야 할 빛, 얼굴 방향, 포즈, 표정 등의 수많은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사진 찍는 도중, 대화를 통한 교감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갖 핑계로 라운드 인터뷰를 거부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부가 아니라 관행을 거슬러 왔다.

주어진 10분 중에 2분만 찍을 테니 따로 찍게 해달라고 동료기자에게 부탁하거나.
식사 시간 전 2~3분만 할애해달라고 연예기획사를 조르곤 했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관행을 거슬러 왔다.

신문엔 한 장의 사진을 게재된다.
그러니 10분간 여럿이 함께 찍는 것보다 2,3분이라도 교감을 통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찍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제 신문 환경도 변했다.
신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도 다양한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
아울러 자회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등에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2,3분으로 각기 다른 용도로 쓸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이젠 그들의 방식 안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그가 나의 첫 ‘라운드 인터뷰 촬영’의 대상이 되었다.
20여 분 일찍 카페로 들어섰다.
1층은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전 타임에 인터뷰를 끝내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
컴퓨터로 사진 작업을 하는 기자들,
나처럼 다음 인터뷰를 위해 미리 온 기자들,
마치 기자실 같은 분위기였다.

2층이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사진을 찍을 공간이었다.
그런데 올라가서 미리 공간을 살펴 볼 수 없었다.
그 시간에도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함께 촬영을 할 사진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다렸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방식에 익숙한 기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행하는 데로 따르겠노라 말했다.
오늘은 철저하게 그 방식을 따르리라 작정했기에 그들의 경험을 믿기로 했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이 1층으로 내려왔다.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5분여 틈을 두고 2층으로 올라오라는 신호가 왔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박보검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스스럼없이 드러낸 하얀 이빨에도 순박함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악수를 하고 서둘러 공간을 둘러보려는 참인데, 옷 매무새를 만지던 박보검이 말했다.
“어디에 설까요?”
“벌써 옷을 갈아입은 겁니까?”
“네, 준비 다 됐어요”

리듬이 느껴질 정도로 발랄한 그의 대답, 내색 못했지만 뜨끔했다.
공간을 둘러보는 것은 고사하고 카메라 세팅도 안 된 상태였다.
통상 ‘라운드 인터뷰’는 타임마다 옷을 갈아입는 게 관행이다.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면 공간탐색과 촬영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짧은 시간에 옷을 갈아입고 촬영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미리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 특유의 '예의 바름'이 오히려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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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건 배우는 준비 완료된 상태였다.
그러니 공간을 둘러볼 짬도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시쳇말로 이때부터 ‘시간은 금’이었다.
그 공간과 방식에 익숙한 사진기자가 재빨리 장소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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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환경에 맞게 조정하려는 순간, 카메라 셔터소리가 터졌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셔터를 눌렀다.
군 훈련소에서 처음 사격하던 날의 느낌이었다.
옆 사로의 동료가 쏜 총소리에 놀라서 엉겁결에 눌렀던 방아쇠, 딱 그 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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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총 쏘듯 터지던 셔터소리가 하나 둘 잠잠해졌다.
다른 동료가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그때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옆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지건 말 건 배우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난 좀처럼 연속촬영 방식으로 촬영하지 않는다.
숨죽여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원하는 순간 한 장씩 찍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러려면 배우의 표정 변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표정을 유도할 처지가 아니다.
그의 표정과 몸짓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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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건 박보검의 표정이었다.
분명 처음엔 그도 어색해 했다.
다섯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자신을 주시하는 상황이니 편치 않았을 터다.
그 어색함,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카메라에 눈길을 주고, 때때로 그 만의 표정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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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옮길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특유의 표정은 사진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장소를 옮긴 게 모두 네 번이었다.
그때 뒤에서 날카로움이 담긴 음성이 들려왔다.

“시간 다 됐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벌써’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라운드 인터뷰’에 참가한 취재 기자들 중 한 명이 던진 말이었다.
그들에게도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으니 목소리에 날이 설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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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여태 사진을 찍어 온 경험에 의하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박보검과의 10분, ‘벌써’라 느낄 만큼 짧은 10분이었다.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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