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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환율전쟁에서 살아남기

중앙일보 2016.03.05 00:01 종합 2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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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환율전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환율전쟁은 많은 국가가 자국 통화 가치를 가급적 약세로 만들어 수출가격을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는 경쟁을 일컫는다. 지난 1월 일본은행이 스웨덴·스위스·덴마크·유럽중앙은행의 뒤를 이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은행 대출을 늘리고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 물가를 올리는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더 낮춰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11일 위안화 환율을 1.9% 갑자기 절하해 세계 금융시장을 놀라게 했다. 올해 초 달러당 6.6위안까지 오르면서 지속적인 환율 절하의 기대가 높아졌다. 환율은 시장의 ‘자기실현적 기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외환시장에서 다른 투자자들이 위안을 팔 것으로 예상하면 빨리 위안화를 팔고 달러로 바꿔 두면 이익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이런 심리를 갖고 위안을 팔면 위안화 가치가 실제 하락한다. 조지 소로스 같은 국제 투기자본의 큰손들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익을 내는 거래에 투자를 늘렸다. 미래에 위안화 금융 자산을 팔겠다고 약정하고 나중에 싸게 사서 갚는 선물 계약이 많아지면 시장에서 위안화는 약세 압력을 받는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5% 이상 줄었다.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 등 외화 자산을 중국 인민은행이 외환시장에서 판 것이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는 환율의 지속적인 절하는 없다고 공언했다. 중국 정부는 자금의 해외 유출을 통제하고 환투기를 막는 조치도 강화했다. 그러나 자본이 해외로 계속 빠져나가면 더 이상 환율을 방어하기 어렵다. 위안화를 국제 통화로 만들려는 중국 정부가 너무 심한 외환 규제를 계속하기도 쉽지 않다. 내수가 계속 부진하면 6.5% 이상의 경제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를 용인하고 수출 촉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위안화 환율이 달러 대비 7위안대로 결국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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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무역이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환율전쟁은 상대가 손해를 보더라도 나만 이익을 보겠다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경쟁적 환율 절하’를 막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2월 말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일본·중국·유럽이 모두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상황에서 원화도 약세 압력을 받는다. “중국을 걱정하는가? 그러면 한국 자산을 팔아라.” 영국의 권위지(紙)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면서 증권가격이 하락하고 원 환율이 치솟았다. 올해 원화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5% 하락했다.

 원화 가치의 점진적인 하락은 수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급격히 변동되면 우리 기업과 투자자들의 환위험이 커진다. 자본 유출로 증권과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국내 소비와 투자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종합적이고 신중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과도한 외환시장 개입을 피하고 원화 가치가 투기 요인으로 급변할 때에만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화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계속 판다면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감소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이 줄고 있지만 유가 하락과 경기 부진으로 수입은 더 줄어 경상수지가 ‘불황형 흑자’다. 억울하지만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환율 조작국으로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외환시장을 면밀히 감시해 필요할 때는 과감히 시장에 개입하고 투기자금의 유·출입을 규제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들을 제거하고 경기 침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수출이 부진하고, 내수가 침체되고, 가계부채와 기업 부실이 늘어나고,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경제정책이 신뢰를 주지 못할 때 자본 유출은 계속되고 금융·외환시장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구조개혁 조치를 실행하고 국내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정책 운용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보여야 한다. 가계부채와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 힘든 상태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확대재정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해외 주요 국가들과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강대국들의 경제정책 파급으로 보는 피해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2010년에 신흥국 중 첫 번째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해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거시경제정책의 공조를 주도했다. 통화·재정·무역정책의 국제 협력이 최대한 이뤄지도록 다른 신흥국들과 연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통화기금과 국제 통화를 가진 국가들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강화해 유사시에 외환보유액을 더 확보하는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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