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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72만원 중고거래 사기 피의자, 알고보니 17개 경찰서 수배중

중앙일보 2016.02.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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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은평경찰서에 고소장이 하나 접수됐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낚시대를 싸게 판매한다’는 글을 본 피해자가 글 쓴 사람이 알려준 계좌번호로 72만원을 입금했는데 결국 낚시대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 직거래가 활발한 요즘, 흔히 접수되는 종류의 사건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거래 계좌의 명의는 유령 법인. 대신 ‘대리인’ 신분으로 이 계좌를 은행에 가서 개설한 이모(36)씨가 있었다. 이씨의 소재지를 파악한 경찰이 여러차례 출석 통지서를 보냈지만 이씨는 이에 불응했다. 결국 경찰은 그해 5월 전국에 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은평경찰서 악성사기범검거전담팀은 잠복 수사 끝에 이씨를 붙잡았다. 사건이 접수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그것도 잠복을 하면서까지 경찰이 이씨를 체포한 건 이유가 있었다. 그가 전국 경찰서로부터 17건이나 수배가 걸려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은평서에 사건이 접수되기 이전인 2014년 12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서울·인천·충남·대구·경남 등 전국 각지 경찰서에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범죄 내용들을 모아보니 중고거래 사기·보이스피싱·계좌 양도·스포츠 도박사이트 개설 등 ‘종합 사기범죄’ 세트였다.

 이처럼 각종 범죄에 이씨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경찰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그를 쫓기 시작했다. 이씨는 주거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이 주변인 탐문·잠복 등을 통해 어렵게 잡은 이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서울 당산동 친구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돈이 필요해 구직사이트를 검색하다 ‘위임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대신 법인 계좌를 개설해주면 건당 3만원’이라는 글이 있어 아르바이트로 한 일일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계좌가 범행에 쓰일 줄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 측은 “현재 이씨가 실제 범행 조직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만 동종 범죄로 이미 전과가 있는데다 수배를 내린 다른 경찰서에서도 이씨에 대한 수사가 이어질 예정이라 추후 새로운 범죄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알았든, 몰랐든 그가 유령 법인들을 대신해 은행에 가서 만든 통장들은 다양한 사기 범죄에 이용됐다. 피해 금액은 액면가만 다 합쳐도 5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위임장만 있으면 제3자도 쉽게 법인 계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은행에서부터 대리인이 법인 계좌를 개설할 때 법인과의 관계 등을 꼼꼼이 살피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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