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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항일 투사 발굴 정재상 소장

중앙일보 2016.02.29 14:19
 

후손이 끊긴 의병들은 그 활동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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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50·사진) 소장. [사진 중앙포토]

20년간 항일투사 발굴에 힘써온 경남 하동군 악양면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50·사진) 소장의 말이다. 그는 최근 구한말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경남 산청출신 의병 9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조선총독부 문서 ‘폭도에 관한 편책’(경남 경찰부장의 보고서, 1908년)을 뒤진 결과다.

이 문건에는 의병으로 참여한 산청군 삼장·시천면 주민의 출신지별 주소·이름·나이 등이 적혀있다. 나이는 18세부터 72세까지 다양해 노소에 관계없이 주민들이 항일운동에 뛰어든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의병들은 산청출신 ‘경남 창의대장’ 박동의(?~1908) 휘하에서 1907년 초부터 1908년 말까지 2년간 산청·하동·함양·구례·남원 등 지리산 일대의 영호남을 넘나들며 일제치하 행정관청과 일본군 수비대 등을 습격했다. 하지만 1908년 10월 산청군 시천면 동당마을에서 박 창의대장이 일본군 습격을 받고 전사하자 같은 해 11월 해산했다.

정 소장이 지금까지 발굴한 의병은 총 500여 명에 이른다. 이번 공개는 2011년 8월 400여 명에 이어 두 번째다.

박 창의대장도 그가 발굴한 대표적 의병장이다. 경남에선 다른 지역과 달리 누가 의병의 최고 우두머리인 ‘창의대장’인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정 소장은 1907~1908년 사이 작성된 일본군의 ‘진중일지’를 뒤져 박동의가 경남 창의대장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중일지에 경남 일대의 의병을 규합하는 격문이 ‘박동의 창의대장’ 명의로 돼 있었던 것이다.

정 소장은 경기도 안양에 있는 LH의 토지주택박물관을 뒤져 2009년 이 사실을 확인하고 박 창의대장의 서훈을 정부에 신청해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게 했다. 그가 발굴한 의병 500여 명 가운데 100여 명이 그의 서훈신청으로 건국훈장애국장·건국포장을 받았다.

이들 의병들의 활동이 그동안 묻혀있었던 것은 대부분 후손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정 소장은 “제가 발굴한 항일투사들은 대부분 후손이 없고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치단체 등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지금껏 묻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활동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역 주간신문에서 ‘하동지역 항일독립투사를 찾아서’라는 시리즈를 연재하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았고, 자세한 기록도 찾기 어려웠다. 그는 국가기록원을 뒤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30회 시리즈를 마쳤다. 그리고는 “지역의 항일투사를 알려야겠다”며 1997년 8월 자택에 개인 연구소를 차렸다. 친구 김필곤(50), 후배 정용주(48), 아내 최영자(48)씨가 그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

정 소장은 2008년 악양면 청년회와 함께 경남도·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악양면 점서리 취간림에 지리산 의병을 추모하는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탑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투사 335명의 이름을 새겼다. 2010년에는 화개면 의신마을에 방치된 공동무덤이 무명 항일투사 30명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2007년 대한민국 보훈문화상을 받았다.

정 소장은 “늦었지만 묻혀 있는 항일투사를 찾아내고 선양사업을 펼쳐 민족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동=황선윤 기자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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