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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의 아이슬란드 오디세이] ⑤ 비포장도로마저 반가운 곳, 웨스트피오르

중앙일보 2016.02.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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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와 대서양이 합류하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 이 외딴섬의 북서쪽에는 웨스트피오르(Westfjords)가 있다. 거친 아이슬란드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이곳은 여름 성수기에도 인적이 드물고, 겨울철에는 가고 싶어도 길이 막혀 못 갈 때가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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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막 시작되던 그때에도 웨스트피오르로 가는 도로 곳곳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았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약 400, 그중 비포장도로가 절반이었다. 대충 계산해보아도 7~8시간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고 야생으로 이어지는 자갈길이 시작되었다. 한눈에 봐도 일 미터당 구덩이가 서너 개는 패어 있었다. 웅덩이 안에는 흙탕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돌부리나 모래 자갈에 차가 긁힐까 걱정하랴, 요리조리 웅덩이를 피하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덜컹덜컹하는 승차감에 어지러움은 덤이었다. 내려서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볼멘소리도 뱉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형편없는 도로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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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로드 트립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레이캬비크에 머물 때의 어느 밤을 떠올렸다. 숙소 주인 헬레나와 아이슬란드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캬비크에 대형 호텔이 들어선다는 말이 있어. 맘에 들지 않아.

“왜요?

아이슬란드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뭐야?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대답했다.

자연이요.

헬레나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 춥고 먼 섬까지 날아오는 이유는 현대식 건물 때문이 아니라 자연이야.  근데 왜 자꾸 자연을 망치는 엉뚱한 짓들을 반복하는지. 감사한 줄도 모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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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지구를 창조하기 전 연습 삼아 만들어본 곳이 아이슬란드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대단했다. 그러나 신이 내린 땅 곳곳에 인간은 흠집을 냈다. 허리가 잘린 산 중턱에는 나무 대신 노란 굴착기가 놓여 있고, 갈대밭 사이에는 탄산음료 페트병이 박혀 있었다. 건물을 지으려는 듯, 풀이 반쯤 깎인 대지에는 커다란 정사각형 구덩이가 파여 있고, 깐 지 얼마 안 된 듯한 아스팔트 도로엔 석유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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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이런 안타까운 장면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헬레나와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자연에 상처를 새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젠가 이곳도 우리가 망쳐버린 다른 곳처럼 변하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이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유난히 반갑고 고마웠다. 속도는 좀처럼 낼 수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는 아파오고, 목적지는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이 투박한 길에서는 자갈과 모래 구르는 소리가 났고, 흙냄새가 풍겼다. 초원을 걷는 양과 말도, 크고 작은 폭포도, 그림 같은 아이슬란드의 하늘도 이 길 위에서는 더 아름다웠다. 나는 여행자를 길 위에 오래도록 잡아두는 이 비포장도로가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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