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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반세기 현역 가수 하춘화

중앙일보 2016.02.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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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아침, [하춘화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중앙일보 인물면 구석의 단신 기사였다.
바쁜 아침 시간에 놓치기 십상일 만큼 작은 기사였다.

내용은 이랬다.

【가수 하춘화(60·사진)씨가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하씨는 23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공연 수익금 1억2134만3721원을 저소득층을 위해 써달라며 전달했다.】

짧은 몇 줄의 기사가 전부였지만 남다르게 다가왔다.
지난해 연말, 인터뷰에서 그녀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봉사,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못해요.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와 싸우는 겁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번에도 이겨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출근하자마자 사진을 찾아봤다.
만난 게, 2015년 12월 24일이었다.

새해가 되면 데뷔 55주년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초 데뷔 55주년을 기념한 ‘나눔·사랑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었다.
55년차 가수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게 인터뷰의 이유였다.

스튜디오로 찾아 온 그녀가 테이블 위에 보따리를 올려놓았다.
무엇인 지 물어봤다.
옷을 두 벌 더 가져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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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해 입고 있는 옷 말고도 두 벌을 더 준비해 온 게 놀라웠다.
통상 신문엔 딱 한 장의 사진이 나갈 뿐이다.
그러니 대부분 여벌을 준비하지 않는 게 다반사다.
사진기자에게 세 가지 선택의 재량을 주겠다는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스튜디오엔 원형 테이블, 의자가 다섯 개였다. 편한 자리에 앉으라 권했다.
그 중 하나는 취재기자가 미리 와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주저 없이 취재기자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마주보는 자리를 택하게 마련이다.
인터뷰 후 취재기자가 이런 말을 내게 했다.

30㎝도 채 안 되는 간격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깜짝 놀랐어요. 팔을 뻗으면 닿고, 숨결도 오갈 정도였어요.”


인터뷰 내용도 그랬다.
여기자인 취재기자와 자매가 수다를 주고받듯 했다.
딱 붙어 앉아 추임새와 맞장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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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 부를 수 있는 대중가요가 삼백 곡,
데뷔는 여섯 살,
지구레코드 전속가수가 된 게 열한 살,
발표한 곡이 이천오백 여 곡,
워커힐에서 북한 관계자 초청 비공식 공연을 한 게 1972년,
지난 사십 년간 기부한 게 이백억,
여느 사람과 다른 이력만큼 한편의 인생드라마였다.
자그마치 반세기가 아닌가.
인터뷰를 듣는 게 아니라 가요사와 정치사가 합쳐진 산 역사를 듣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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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는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라고 했다.

별명이 몇 개 있어요. 눈이 커서 딱부리, 빈틈없어서 독일 기계, 술·담배 못해서 이조시대 여자라 불려요. 김장땐 마늘·배추·고춧가루 걱정, 동지엔 팥죽 걱정이죠. 무대에서만 가수죠, 무대 밖에선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일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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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현역 가수의 비결을 취재기자가 물었다.

눈, 비, 태풍 오는 날도 있었죠.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럴 때마다 악기, 춤 등 무엇을 배우는 계기로 삼았어요. 인기란 물거품이죠. 자기도 모르게 왔다 가죠. 이 시간을 인생 발전의 계기로 삼는 거죠. 요즘도 클래식과 탭댄스를 배우고 있어요.”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준비하며 옷을 한 벌 골랐다.
“우선 입고 오신 옷이니 한 번 찍고요, 검은색 옷으로 바꿔서 한 번 더 찍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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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른 옷은 검은 색에 팔이 드러나 보이는 씨스루였다.
가볍지 않은 무거운 기품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 주문을 했다.
“콘셉트는 ‘무대의 여왕’입니다. 너무 많이 웃지는 마시구요, 범접할 수 없는 여왕의 카리스마를 보여 주세요”

그녀가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난 웃을 때가 제일 이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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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보니 그랬다.
그 웃음, 그냥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노래로 세상에 기쁨을 주고,
기부로 세상에 희망을 주며,
그렇게 살아온 그녀의 삶이 만든 웃음,
이른바 반세기 현역 ‘하춘화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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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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