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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집에서 간호 말기암 환자 "다리 감각 돌아왔어요”

중앙일보 2016.02.29 00:02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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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병원 김은숙 간호사가 강만수씨의 몸을 살피고 있다. 강씨는 얼마 전 말기암 진단을 받고 병원 대신 가정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다.


내달 2일부터 가정 호스피스에 건보 적용

불과 20년 전만 해도 중병을 앓던 환자는 대부분 가정에서 생을 마감했다. 1995년 통계를 보면 가정 사망자(16만 명)가 병원 사망자(5만5000명)보다 훨씬 많다. 지금은 약 80%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말기암 환자는 90%에 가깝다. 수명은 조금 늘었지만 삶의 질은 현격히 떨어졌다. 다음달부턴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편안한 죽음을 준비하는 길이 열린다. 정부는 다음달 2일부터 말기암 환자가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가정 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이에 앞서 2008년부터 자체적으로 가정 호스피스를 운영해 온 충남대병원 의료진과 동행해 관련 내용을 미리 살폈다.

말기암 환자 강만수(73·가명)씨는 1주일 전부터 병원이 아닌 집에 머물고 있다. 3년 전 식도에 생긴 암이 온몸에 퍼졌다. 의사는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했다. 답답한 병원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강씨는 지난 15일 퇴원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낡았지만 병원에 비할 바 없이 훨씬 안락했다. 낯선 병원 밥 대신 아내의 손맛이 담긴 집밥을 삼켰다. 정해진 식사·수면시간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 아내는 더 이상 간이 침대에 쪼그려 잠들지 않았다. 다른 환자의 임종을 보는 고통을 덜었다.

마음이 편해서인지 몸 상태도 한결 가뿐해졌다. 22일 충남대병원 김은숙 간호사가 방문해 보니 엉덩이에 있던 곰팡이가 사라졌고, 왼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강씨에겐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다리 운동을 열심히 해서 혼자 힘으로 화장실까지 걸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 김 간호사가 강씨를 구석구석 살폈다. 혈압을 재고 피부 상태를 확인했다. 가지고 간 영양 수액을 달았다. 이날 오전 통화에서 식사량이 줄었다는 얘길 듣고 챙겨온 수액이었다. 통증은 크지 않아 지금 사용하는 진통제를 그대로 사용키로 했다. 함께 온 자원봉사자는 족욕과 마사지를 도왔다. 모든 의료서비스가 병원에 있을 때와 같았다.

집에 온 뒤로 아내와 더 애틋해졌다. 사실 강씨는 이따금 병원에 돌아가자고 한다. 자신을 돌보며 고생하는 아내를 보기 힘든 탓이다. 그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면) 딱하다. 혼자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 것도 집사람 때문이다. 용변만 혼자 봐도 저 사람이 고생을 덜할 테니까”라며 글썽였다. 아내 신복순(66·가명)씨는 “평생 저런 말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고맙다”며 "간병인을 한 명 구해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 힘들긴 하다. 그래도 마음은 훨씬 가볍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온 뒤로) 남편이 매우 편안해 한다. 내 몸은 조금 고생스럽지만, 환자가 편안하니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가정 호스피스 이용한 10명 중 9명 ‘만족’

지금까지 160여 명이 충남대병원의 가정 호스피스를 이용했다. 대부분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2008년부터 가정 호스피스를 담당한 최영심 간호사는 “처음엔 대부분 못 미더워하지만 10명 중 9명은 가정 호스피스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다나-파버암연구소에서 말기암 환자 3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집에서 호스피스 간호를 받으면 육체적·감정적 고통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임상종양학회지, 2010). 가정 호스피스는 사별 가족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같은 연구에서 사별 가족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비율은 병원(21.6%)보다 집(5.2%)이 훨씬 낮았다.

경제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수년에 걸쳐 암과 싸우고 나면 살림살이는 매우 팍팍해진 상태다.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최신 항암제는 연간 1억원에 이른다. 말기암까지 오면 이런 값비싼 항암제는 필요없지만 이미 깎여 나간 재산에선 병원비조차 큰 부담이다. 가정 호스피스는 방문당 5000~1만3000원에 불과하다. 전담 간호사가 8번, 의사·사회복지사가 1번 방문한다는 가정 아래 한 달 평균 5만원 내외다.

어디서 죽고 싶나 … 76%가 “집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가정 호스피스에 대한 요구가 크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2012년 말기암 환자 465명에게 물었더니 75.9%가 선호하는 호스피스 장소로 집을 꼽았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은 24.1%에 불과했다. 이유도 다양했다. 익숙한 장소여서 안정감이 든다(88.9%·복수응답),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72.4%), 경제적 부담이 적다(51.4%),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31.8%), 사생활이 유지된다(26.4%), 집에서 임종하고 싶다(7.7%) 등이었다.

하지만 가정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다. 많은 말기암 환자가 간병할 사람이 없어 입원을 택하거나 요양시설에 머무른다. 2013년 암 사망자 7만5000여 명 가운데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는 89%였다. 가정 호스피스는커녕 병동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의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전문 간호사 월 8회 방문 … 24시간 전화 상담

정부는 다음달 2일부터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전국 17개 병원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시작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월 5만원 내외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의사로부터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자나 환자 가족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의료진이 하루 안에 전화하고, 이틀 안에 가정을 찾는다.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가 주 2회 이상, 의사·사회복지사가 월 1회 이상 방문한다. 병원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진과 24시간 전화로 상담할 수 있다.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면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옮겨진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최윤선 이사장은 “가정이야말로 환자가 생리적·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암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섬망, 수면장애는 오히려 가정에서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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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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