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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시리아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6.02.27 00:01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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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시리아에서 몸살로 누웠을 때
보살펴준 부부는 살아 있을까
오늘부터 발효되는 휴전협정
반신반의하며 기대해 본다

세계시민학교 교장

20여 년 전, 세계 일주 중에 있었던 일이다. 내 여행 원칙은 ‘모든 국경을 육로로 넘자’였다.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아프리카를 거쳐 요르단까지는 잘 왔는데 우리나라와 국교가 없는 시리아 앞에서 발목이 잡힌 거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던가. 요르단 한국대사관에 가서 시리아에 그것도 육로로 갈 방법이 없겠냐고 생떼를 썼더니 그곳 사정에 밝은 교민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너무나 운 좋게 그분의 인맥으로 요르단 주재 한국 회사에서 시리아 출장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야호! 그러나 정작 국경을 넘을 때는 온몸에 쥐가 날 만큼 긴장되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국교도 없는 나라에 비자 대신 가짜 출장증명서로 들어가려니 왜 안 그렇겠는가? 다행히 허술한 국경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혼자 다니는 한국 여자를 처음 보는지 본분을 잊고 이런저런 개인적인 질문만 하다가 흔쾌히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시리아에서 제일 궁금했던 건 고대 유적지 팔미라였다. 국경에서 다마스커스까지 두 시간, 거기서 다시 세 시간쯤 사막을 하염없이 달리니 멀리서 대추야자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막 무역 덕분에 한때 세상에서 제일 부유했던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에는 제노비아라는 절세미인 여왕이 있었다. 권력에 눈이 먼 이 여인은 왕인 남편을 죽이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로마를 공격하다 패망하고 만다. 그 후 로마제국을 거쳐 이슬람 손에 들어갔는데 그래서인지 유적지에는 각 시대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노비아 신전, 로마식 극장, 옛날 장터, 이 지방의 신인 벨을 모셨던 신전까지. 팔미라에 있는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온 듯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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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9년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이 고대 유적지를 지난해 8월, 근본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박살을 내 버렸다. 자기들을 해치지도 않는 세계 문화유산에도 이런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극악무도할 것인가? IS만이 아니다. 정부군도, 수많은 반군 단체들도 무차별 공중 폭격을 하고 마을을 통째로 불 지르고 사린 가스를 뿌리고 약탈하고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성폭행하는 등 민간인들에게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건 마찬가지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이 내전으로 25만 명 이상이 죽고 (시리아 정치연구센터는 2016년 2월 기준 사망자가 47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주요 도시들은 쑥대밭이 되었다. 인구의 절반인 1100만 명 이상이 국내외 난민이 되었고 그중 500만여 명은 옆 나라인 터키, 레바논, 요르단에서 피신 중이다. 5년 만에 멀쩡했던 나라 풍비박산 난 거다.

 이 지역을 여행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시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품위 있고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친절하며 따뜻한지.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가면 지나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짐을 들어주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심한 감기몸살로 몸져누웠을 때 일주일도 넘게 나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알레포 게스트 하우스의 젊은 부부와 어린 딸 미리암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아,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는 있는 걸까?

 이 식구가 살았던 알레포가 며칠째 격전지가 되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22일 미국과 러시아가 휴전 합의를 한 직후부터다.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 전에 요충지인 이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휴전 협상에 전쟁의 주체인 정부군과 반군이 아니라 왜 미국과 러시아가 나서는가 말이다. 게다가 지난 5년간 수십만 명이 죽어도 눈 깜짝 안 하더니 이제 와서 두 정상이 달랑 전화 한 통화로 휴전 합의에 도달했다니, 이 내전이 이렇게 간단히 끝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럼 그동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나도 알고 있다. 시리아 해법이 간단치 않다는 걸. 이 내전은 15명의 학생이 시작한 반정부 구호를 정부가 과잉 진압하면서 발발되었는데 곧 이어 정부군은 러시아와 시아파의 종주 이란이, 반군은 미국과 수니파의 종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며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 후 반군이 사분오열하고 IS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복잡하게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해 여름에 일했던 터키 남부 시리아 난민촌의 국제 구호 비정부기구(NGO)들은 휴전 효력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휴전 협정에 IS,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 및 주요 테러단체들이 제외되었으니 이들은 계속 전쟁을 할 것이고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휴전의 주체들도 무력을 사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합의에 기대를 걸고 싶다. 이로 인해 단 한 명이라도 목숨을 구하고, 단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휴전 협정은 2월 27일, 오늘부터 발효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세계시민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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