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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 “100명이 5시간씩 필리버스터 땐 보름 버틴다”

중앙일보 2016.02.24 03:02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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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의화 국회의장,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부터)가 23일 여야 대표 회동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막았다. 43년 만의 필리버스터다.

선진화법 이후 첫 무제한 토론


국회는 1973년부터 의원들의 발언 시간을 제한, 필리버스터를 봉쇄했다. 하지만 2012년 국회선진화법에 ‘무제한 토론’ 조항이 들어가 부활했다.

 23일 국회 본회의는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4시간20분 뒤인 오후 6시50분에 열렸다. 정 의장의 주재로 여야 지도부가 본회의 직전까지 테러방지법안 합의를 시도하면서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이었다.

정 의장은 본회의 개의를 알리면서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테러와 사이버 테러 등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에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법률 자문 결과 테러방지법안은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직권상정한 법안은 ‘국가정보원장이 대테러 조사와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지만 사전이나 사후에 테러대책위원장(국무총리)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야당 요구를 일부 반영한 수정안이었다.

 그러자 곧바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무제한 토론 첫 주자로 나선 더민주 김광진 의원은 느릿느릿한 어조로 발언을 시작했다.

김 의원은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로 간주한 경우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며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철저히 유린당했던 국가비상사태와 계엄의 시대로 역사의 시계추가 되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언이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회의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민주가 필리버스터를 악용해 법안을 발목 잡고 있다. 의사진행 방해 절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테러의 정의’ 등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말 천천히 해”라고 훈수를 둔 야당 의원도 있었다. 2시간쯤 지난 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잘 하고 있다. 4시간만 더하라”고 말했다.

문희상 의원은 “그러면 DJ(김대중 전 대통령) 기록을 깨는 거야”라고 받았다. DJ는 64년 4월 동료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5시간19분 동안 의사진행 발언을 한 일이 있다. 김 의원은 이날 5시간34분 동안 발언했다.

 더민주 은수미·유승희 의원뿐 아니라 국민의당·정의당에서도 각각 문병호·박원석 의원이 토론을 신청했다. 더민주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필리버스터는 더 이상 희망하는 사람이 없거나 지쳐서 못할 때까지 한다”며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하나=국회법에 따르면 무제한 토론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으로 국회의장에게 신청할 수 있다.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본회의는 의장이 토론 종결을 선포하기 전까지 산회하지 않고 회의를 계속한다.

무제한 토론을 중단시키려면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해 무기명 투표를 거쳐야 한다. 투표에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새누리당 현재 의석수(157석)는 재적 의원(293석)의 5분의 3(176석)에 못 미친다. 야당이 스스로 중단하기 전에는 타의로 중단시킬 방법이 없는 셈이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더민주 의원총회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장기집권의 서막이 열린 것으로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총장에선 “오늘 신청해서 무제한 신청하면 회기가 끝나는 3월 11일 0시까지 계속할 수 있다. 우리 당 100명이 15일간 하려면 한 사람당 5시간 정도 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나왔다.

 ◆다른 법안들 어떻게 되나=필리버스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종걸 원내대표다. 더민주 의원총회에서 주장했다.

이 바람에 전날 여야 지도부가 심야 회동 끝에 합의한 북한인권법안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77개 법안은 본회의 상정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법사위(위원장 더민주 이상민 의원)가 열리지 않아서였다.

선거구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안 처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날 오전 합의에선 26일 본회의에 처리할 계획이었다. 새누리당은 이날 밤 12시에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입법 방해 행태는 국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것과 같다”며 “즉각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여론에 기대고 있다.

글=박유미·위문희·김경희 기자 yumip@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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