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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40대를 정의하다 ④인터뷰] "예전의 40대와 지금은 다르죠"

중앙일보 2016.02.24 02:30 강남통신 3면 지면보기

2016년 40대 초중반을 일컬어 ‘영포티‘(Young Forty)라고 부른다. 1990년대 그들은 ‘X세대’로 불렸다. 그전 세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과거 기성세대는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의 잣대로는 그들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알 수 없는 세대’, X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그들은 이 사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4년 기준 40대는 851만 명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선거권을 가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자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인구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트렌드를 주도하는 강남의 40대는 영포티의 삶을 대표한다. 이들이 이끄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江南通新은 창간 3주년을 맞아 지난 2월 3~17일 15일 동안 강남·서초구에 거주하는 40대 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를 이끄는 40대의 정치·경제·여가·가족·은퇴·문화에 대한 생각을 강남 40대 3명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봤다.


 피부과 전문의 김명환씨
레고 만들고 몸 가꾸고, 젊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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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40대와 지금은 다르죠. 제 아버지 때만 해도 마흔이면 불혹을 얘기하셨는데 저희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며 공감했거든요. 실제 저희 또래는 ‘아저씨’ 같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가족 내의 위치도 달라졌어요. 부모님 때와 다르게 자녀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잖아요. 저만 해도 아버지랑 놀았던 기억이 없지만 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집에선 권위 내려놓고 아이들과 어울려
밖에선 아저씨같이 보이기 싫어 자기관리


초등학교 시절부터 결혼 후 개인 병원을 개업해 운영하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서초동에 살아온 피부과 전문의 김명환(40·서초동) ‘일산차앤박피부과’ 원장의 말이다.

그는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한다. 대학 시절 체력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수영은 요즘도 열심이다. 퇴근 후엔 피곤하더라도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 강습을 받고 적어도 세 번 이상 수영을 즐긴다. 지난해 10월엔 아마추어 수영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는 “연령별로 나눠서 경기하는데 30대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 막상 가서 보니 40대 중에 나보다 기록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올해는 꼭 메달을 따고 싶다”며 웃었다. 활동적인 스포츠를 좋아해 겨울엔 스키·스노보드도 즐긴다.

그는 주변 또래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역할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그는 종합병원 의사인 아내를 위해 가사 분담에도 적극적이다. 김 원장은 “요즘은 남편이 집안일 안 하면 구박받는다. 아내도 직장을 다니니 집안일은 분담해야 한다. 청소는 내가, 빨래는 아내가 맡는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유치원생인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레고를 좋아하는 김 원장을 보고 자란 때문인지 아이들도 레고를 좋아해 함께 레고를 한다. 그는 “레고를 같이 하면 공통의 화제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며 “또 아이들과 함께 스키와 스노보드 등 스포츠를 함께 하는 게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40대의 특징을 “합리적이면서도 과거 부모님 세대에 비해 철이 덜 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철들다’의 의미는 가족을 위해 취미 생활을 희생하거나 옛날처럼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이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보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윗 세대가 본다면 자기중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면에 더 주목한다.

또한 경제적인 분야에서도 모험 대신 안정을 택하는 것이 요즘 40대의 특징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시간이나 생각을 소모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나 해법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조혜영씨
사찰음식·요가 배워 10년 후 힐링센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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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주부인데 자기애가 너무 강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잖아요. 내가 건강해야 가족 건강도 챙기고요. 사찰음식을 배우고 요가를 꾸준히 하는 것도 그래서죠. 40, 50대 여자는 이렇다는 틀에 박힌 모습을 벗어나 내 건강을 지키고 취미를 즐기며 살고 싶어요.”

10년 전 자녀 교육 때문에 대치동 이사
날 위해 투자하는 만큼 가족에게도 잘해


조혜영(46·역삼동)씨는 2012년 9월부터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다. 요가는 10년 전 시작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는 10년간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일을 그만뒀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직업 특성상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골반이 틀어졌다.

지인의 권유로 요가를 시작한 후 몸이 달라졌다. 더 가볍고 건강한 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찰음식을 알게 됐다. 동국대 사찰음식연구소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했고 열심히 배우는 제자를 눈여겨본 스승의 제자가 되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발행하는 사찰음식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부모님이 내 나이 때 모습을 떠올려 보면 10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희생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만큼 주부로서도 최선을 다한다. 가족들의 아침 식사는 반드시 챙긴다. 가족들은 외식보다 조씨가 직접 만든 요리를 훨씬 좋아한다. 딸의 등굣길도 책임진다. 그는 “학교가 가까운 편이지만 꼭 데려다준다. 고등학생이 된 후 힘들어하는 데다 잠깐의 시간을 활용하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울 수 있다. 무엇보다 등굣길에 아이가 힘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기 위해서다”고 했다.

친정 근처에 살다 10년 전 강남으로 이사를 온 것도 딸의 교육 때문이다. 그는 “강남은 학원이 많고 교육 정보를 공유하기 좋다. 아이도 주변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니 공부할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엔 요리 배우기, 요가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딸의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온다. 딸에게 저녁을 챙겨 먹이고 학원에 보낸다.

남편의 퇴직까지 남은 시간은 10년 남짓. 가족은 함께 은퇴 후를 계획하고 있다. 남편 퇴직 후 함께 자연음식과 요가 등을 접목한 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싶다. 남편도 건강식을 좋아하는데 특히 버섯에 관심이 많아 공부해 볼 생각이다. 조씨는 요가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그는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말도 있듯 음식의 힘을 믿는다.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강좌와 체험 등이 있는 센터를 열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패션 마케터 박성목씨
결혼은 선택, 외롭다 느낄 시간도 없이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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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20대는 ‘신인류’라고 불렸어요. 내가 신인류라서였을까요. 결혼은 선택이고, 스스로 즐기며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이 있겠지만 혼자일 때의 즐거움도 있잖아요. 어느 쪽이 좋다가 아니라, 각각 장단점이 있고 그중에 선택을 한 겁니다.”

내가 신인류라서일까요, 즐기며 살아요
휴대전화 번호 4000개 … 돈보다 사람 좋아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박성목(46·청담동) 실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30대 중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지만 숨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사교적인 성격이었던 데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남이 잦았는데 이를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요즘도 매일 저녁 약속이 있을 만큼 바쁘게 보낸다.

그의 별명은 ‘청담동114’다. 청담동에서만 20년 넘게 살았고 워낙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의 휴대전화엔 4000개가 넘는 번호가 저장돼 있다.

사진을 전공한 그는 20대 중반이던 1995년 모델라인에서 3개월 연수를 받은 후 그해 10월에 당시 모델들에겐 최고의 무대로 꼽혔던 장광효 디자이너의 패션쇼 무대에 오르며 데뷔했다. 그 후 국내 남자모델 톱10에 들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98년 모델을 그만두고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에 입사했다. 박 실장은 “모델로 원 없이 무대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서른 넘으면 어느 회사도 신입 사원으로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하고 싶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 후 카루소는 어려움에서 벗어났고 그는 지금까지 장광효 디자이너를 도와 패션쇼 디렉팅부터 마케팅 업무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사람과의 인연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뭔가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우연히 만난 사람도 통하는 게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그렇게 산다. 그냥 좋으면 된다. 그렇게 10명을 만나면 절반은 나를 이용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 사람이 된다”며 웃었다.

그는 ‘외롭다’ 느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 마흔이 넘으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건강 관리에 더욱 신경 쓴다. 젊을 때부터 해온 수영을 꾸준히 하면서 요즘은 체중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관심 있는 공연은 꼭 챙겨보고 신작 영화가 나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첫날에 본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며 한 주를 정리한다. 그는 “평일엔 매일 약속이 있고 업무상 미팅도 많다 보니 주말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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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치 우린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②경제 우린 부동산도 주식도 믿지 않는다
③문화 우린 아저씨·아줌마 아니다, 여전히 트렌드의 중심
④인터뷰 "예전의 40대와 지금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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