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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피터 몬다비 별세

중앙일보 2016.02.24 01:07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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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몬다비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격으로 흔들림 없이 가업을 끝까지 지켜냈고 진정한 나파밸리 와인의 혁신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를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키운 ‘나파 와인의 개척자’ 피터 몬다비가 별세했다. 101세. 찰스크룩 와이너리는 이 회사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몬다비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세인트헬레나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22일 밝혔다.

나파밸리의 낡은 와인 산업을 혁신한 개척자


 몬다비는 1914년 미네소타주 버지니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세사르 몬다비는 와인용 포도를 출하하는 과일 운송업체를 운영했다. 몬다비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포도상자를 포장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1938년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와인 연구를 위해 UC버클리 대학원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1943년 부모가 나파밸리의 찰스크룩 와이너리를 인수하자 형 로버트와 함께 가업에 참여했다. 로버트는 경영을, 그는 와인 연구를 맡았다. 찰스크룩 와이너리는 나파밸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이너리로 1861년 프로이센 출신인 찰스 크룩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나파밸리는 자두나 배·견과류 등을 재배하던 평범한 농촌이었다. 와인을 생산하긴 했지만 큰 항아리에 담아 파는 싸구려 제품이 전부였다. 피터 몬다비는 숙성 과정에서 산화(酸化)를 피하고 와인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저온숙성 기술을 개발했다.

또 나파밸리 최초로 프랑스산 오크통을 도입해 이 지역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렸다. 피노누아르·샤도네 등 프랑스산 포도 품종을 들여오는 등 다양한 품종을 현지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몬다비 형제는 1959년 아버지 세사르가 사망하면서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벌였다. 가장 큰 원인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였다. 외향적이고 저돌적인 로버트와 달리 그는 보수적이고 신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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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갈등으로 1965년 갈라선 형제는 40년 뒤 화해했다. 형 로버트(오른쪽)는 2008년 별세했다.

결국 로버트는 1965년 찰스크룩 와이너리에서 나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를 창업했다. 이 와이너리는 소비뇽 화이트 와인 ‘푸메 블랑’과 다섯 가지 포도 품종을 혼합한 레드 와인 ‘오퍼스 원’ 등 인기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93년 나스닥에 상장한 뒤 무리한 사업 확장 끝에 2004년 음료제조업체 컨스텔레이션 브랜즈에 매각됐다.

 반면 피터 몬다비는 흔들림 없이 가업을 이어갔다. LA타임스는 몬다비의 부고 기사에서 “피터는 로버트처럼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파밸리의 낡은 와인 산업을 혁신한 것은 로버트가 아니라 피터였다”고 평했다.

형제는 2005년 화해하고 공동으로 제조한 와인 ‘안코라 우나 볼타(다시 한번이라는 뜻)’를 내놓았지만, 그들이 함께 할 시간은 짧았다. 2008년 5월 로버트는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피터 몬다비는 100세를 맞이한 2015년 은퇴하기까지 매일 출근해 결재하고 와인을 맛봤다.

그는 임종하기 앞서 가족들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한가지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이렇게 답했다. “끝까지 가업을 지켜낸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 어려운 시기에도 가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선친께 말씀 드리고 싶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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