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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메시아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앙일보 2016.02.24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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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논설위원

인생사에서나 신앙의 역사에서나 헌정사에서나 제일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마치 고도(Godot)를 기다리듯 우리는 기다린다. 기다리면 위대한 ‘그분’이 나타날 것이다. 국민·유권자는 ‘정치적 메시아’를 희구한다. 세상을 구원할 존재에 대한 믿음인 구세주의(救世主義)·메시아주의(Messianism)는 종교뿐만 아니라 세속 정치에서도 강하다.

메시아주의는 뿌리 깊은 정치문화의 일부분이라 없앨 수는 없다
진짜·가짜 메시아·미륵불 있듯이 정치지도자도 가짜·진짜 있다

 한국 정치와 미국 정치는 많이 닮았다. 정치 메시아주의가 공통분모의 한 축을 이룬다. 대통령중심제를 운영하다 보니, 그리고 미국을 정치 모델로 삼다 보니 안 닮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라고 불리는 ‘예비 메시아’가 제시하는 길은 쉽다. 그들은 기적을 이룰 것이다. 엄청난 것을 약속한다. 나라의 전면적인 리모델링이나 천문학적 숫자의 새로운 일자리를 약속한다.

 이번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구는 후보들 중 종교적 소명이 엿보이는 메시아적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다. 공화당의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Make America Great Again)!’고 국민·유권자에게 메시아처럼 명령한다. 샌더스는 “한 주에 40시간씩 일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가난하게 살면 안 된다(Nobody who works 40 hours a week should be living in poverty)”며 임금도 어찌 못했던 가난 퇴치를 약속한다. 정치 메시아에게 ‘무엇을, 어떻게’를 꼬치꼬치 묻는 것은 실례다.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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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정치적 메시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신(神)이 부여한 카리스마가 있기에 저항감이 생길 수 없다. 둘째, 대통령중심제의 특성 때문이다. 대통령의 역사적 선임자는 왕이다. 왕은 태평(太平)을 보장한다. 왕이나 그 후임자인 대통령은 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게 한다. 군주정을 완벽히 탈피하지 못한 민주공화정에서는 근심 박멸이라는 불가능한 꿈이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셋째, 고래의 전통적인 종교문화 환경이 현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에는 메시아주의 전통이 있다. 메시아라는 말이 유래한 유대교·그리스도교에만 메시아주의가 있는 게 아니다. 불교의 미륵불(彌勒佛)은 내세에 성불해 중생을 제도한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종교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도령이 나타나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한다는 희망이 있었다. 종교적 요소는 항상 세속으로 확산된다.

 넷째, 청년 실업, 노년 빈곤 같은 절박함 때문이다. 속는 셈치고 지지하게 된다. 다섯째, 당파심 때문이다. 우리 편이니까 그가 위대해 보인다. ‘나는 로맨스, 남은 불륜’의 논리가 정치 메시아주의에도 적용된다. 우리 편 메시아가 형편없는 성과를 냈을 때도 ‘그쪽이 집권했으면 더 나빴다.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는 결론이 진실로 자리 잡는다. 여섯째, 학자·지식인의 침묵이나 방조도 한몫한다. 일곱째, 메시아주의는 ‘허용된 허구’다. 영화·연극·문학작품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개의치 않듯 정치적 메시아주의에도 ‘그러려니’ 한다. 이러니 ‘정치적 메시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총선·대선 후보는 바보다.

 그렇다면 정치 메시아주의는 박멸해야 할 것인가. 어려울 것이다. 뿌리가 워낙 깊다. 없애려고 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 메시아주의는 이미 우리의 ‘문화적 본성’이 됐는지도 모른다.

 위험 부담이 큰 정치 메시아주의를 탈피하려면 첫째, 비(非)메시아형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거대한 약속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것만은 꼭 하겠습니다’는 공약을 지키는 성공한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둘째, 메시아주의를 없앨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통제는 가능하다. 정치인이 대중을 겨냥해 메시아적 수사를 구사하더라도 전문가 집단이 그의 말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사실 정치적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정치 메시아주의는 큰 문제가 안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존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한다”고 공격했다. 사실 오바마 지지자들은 신앙을 방불케 하는 열정을 분출했다. 메시아의 반대는 적그리스도다. 2010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4%, 공화당 지지자의 24%가 오바마가 적그리스도라고 믿었다. 미국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오바마케어·쿠바·이란 등 이런저런 치적이 많다.

 마지막으로 ‘메시아주의의 역설’에 유념해야 한다. 메시아주의는 위험하다. 국민과 유권자를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에 가짜·진짜 미륵불·메시아가 있듯이 정치 영역에서도 진짜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은 진짜 메시아형 리더가 아닐까.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진정한 메시아였다고 수긍하게 된다.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정치 메시아들은 “상황이 시급하고 심각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급하지 않은가. 가짜에 속지 말아야 하지만 50년이나 100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서 우리 조상들은 가짜를 뽑고 진짜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안 되겠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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