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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연봉킹’과 낙인효과

중앙일보 2016.02.24 00:3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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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술 경제부문 차장

선배 기자 : “월봉이 정말 12억6000만원 맞아?”

 필자 : “건강보험공단이 파악한 공식 소득 자료잖아요.”

 금융권 취재를 하던 2005년 가을이었다. 국회의원이 공개한 최고경영자(CEO) A씨의 월 보수가 화제였다. 연봉으로 치면 151억원을 넘는 거액이라 타당성 논란이 일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연봉 공개는 ‘제도’가 됐다. 벌써 3년째로 접어든다. 상장사의 총수·CEO 등이 ‘등기 임원’이면서 1년에 5억원 넘게 받으면 월급 속살이 드러난다.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성과만큼 받는다’는 문화를 정착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인다는 좋은 명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공개 한 달을 앞두고 새로운 불씨가 피어났다. ‘등기·미등기 임원’을 가리지 않고 상위 5명의 보수를 공개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연봉 노출을 피해 등기 임원을 사퇴한 이들이 등장하면서 나온 조치다.

 하지만 기업들은 쌓였던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생활 침해’가 커지고 ‘우수 인재 영입도 어려워진다’고 항변한다.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재계 인사에게 물어봤다.

 필자 : 횡령·배임 같은 전횡이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로 볼 수 있지 않나요?”

 임원 B씨 : “공개 대상이 상장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상장사만큼 회계 시스템을 갖춘 곳이 어디 있습니까.”

 필자 : “미국·영국·독일도 시행하는데요.”

 B씨 : “해외에선 연간 1회 공개합니다. 이번 법안은 2회나 공개토록 했죠. 또 직원들까지 포함했어요. ‘관음증(엿보기)’의 소산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임원 연봉에 ‘상한제’를 두자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기준(더불어민주당) 의원과도 얘기해 봤다.

 필자 : “관음증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김 의원 : “재계가 총수를 경호하는 곳입니까. 기업 공시 강화는 세계적 추세예요. 관음증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특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편법이 없다는 걸 보여주면 불신을 걷어내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을 보면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사실 연봉 공개 이면에 숨은 ‘대기업의 역할, 양극화 해소 ’ 같은 쟁점은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무거운 숙제들이다.

 논란 속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주의에 대한 ‘낙인효과’의 일반화다. 해마다 봄이 되고 공개 시즌이 다가오면 ‘연봉킹’들을 색안경과 의혹의 눈초리로 볼 때가 많다. 그사이 ‘반(反)기업 정서’가 똬리를 틀고, 시장경제 근간인 ‘성과주의’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연봉 공개가 시대적 흐름이라면 기업 투명성을 고취하면서, 동시에 건전한 성과주의를 북돋는 쪽으로 운용의 묘를 찾아야 한다. 정치권·재계가 평행선을 달릴 일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창업 부자가 되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선 고액 보수에 주홍글씨를 찍는다면 어느 장단에 맞추겠는가.

김준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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