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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혼자 살 준비가 됐나요?

중앙일보 2016.02.24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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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그들 노부부가 사는 집은 현관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아내, 왼쪽은 남편의 구역이다. 그들이 함께 식사하는 건 기념일에 자녀들과 함께하는 외식 정도다. 서로 생활에 간섭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부부는 40년쯤 살아도 타인이다. 간섭하고 기대할수록 갈등만 깊어진다는 걸 깨닫고 환갑 때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타인으로 살자고 남편과 합의했다. 그 이후 인생이 훨씬 쿨하고 평화로워졌다”고 했다. 서로 부대낀 세월만큼 닮아가는 이상적인 부부도 많지만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부부도 많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훌쩍 앞서는 건 그래서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인 시대
혼자 살되 타인과 연합하는 법 배워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미 대세다. 네 가구 중 한 가구(27.1%)가 1인 가구라는 통계뿐 아니라 이들처럼 한집에 살아도 따로 사는 정서적 싱글족도 많다. ‘혼자 잘 사는 법’을 찾는 건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혼자 사는 지인은 “요즘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은 1인 가구를 처량하고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려는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를 대변한다”고 했다. 정말 혼자 살면 외롭고 불행할까? 서울연구원의 1인 가구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힘들다(51.2%) 등의 어려움을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절반 가까이 혼자의 삶에 만족(48.2%)한다고 답했다. 불만족은 6.2%였다.

 그는 또 “우리 사회 시스템은 1인 가구에 비우호적”이라고 했다. “싱글족이 세금도 더 많이 내는데 사회 시스템은 시대착오적이다. 한 예로 관공서들은 왜 그렇게 등기우편을 부치는지 모르겠다. 평일 낮시간에 집에서 어떻게 우편물을 받나. 아직도 사회 시스템은 엄마가 낮에 집을 지키는 시대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1인 가구 정책은 거의 없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부터 1인 가구 지원조례를 만든다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 감도 못 잡는 실정이다. 1인 가구의 45% 이상이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빈곤과 주거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만 있을 뿐이다. 가족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사회적으론 준비가 안 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은 1인 가구를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1인 가구는 연령대, 수입 규모, 혼자 사는 이유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대응방법도 다양해야 한다. 비슷한 이해관계의 소규모 집단을 상대로 한 민간 차원의 접근은 그래서 유용하다. 프랑스에서 2003년 폭염으로 1만7000명의 독거노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등장한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사는 ‘코아비타시옹’도 민간단체 활동으로 시작됐다.

 최근 1인 가구 대상 사회운동은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이 주류다. 싼 주거공간 확보를 위한 공동주택운동도 1인 가구들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뒷받침하는 형태로 발전 중이다. 실제로 1인 가구는 이웃과 연대한 기초적 돌봄이 없으면 고독사 등 각종 사회문제로 연결될 우려가 크다. 한데 활동가들은 "인내와 사랑, 간섭과 기대감 같은 가족주의적 관계에 익숙한 우리 문화가 타인과 함께 사는 생활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대상 공동주택을 운영하는 민간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임경지 대표는 “타인과 살 때는 자신의 불편과 이해관계를 드러내 놓고 토론하는 민주적 과정이 중요하고, 감정이 배제된 느슨한 공동체로 부대끼는 장면을 줄여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1인 가구 연합에는 갈등을 조정하는 외부의 조정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타인과의 삶은 가족과의 삶과는 다른 규칙과 태도, 가족주의와 충돌되는 가치의 습득을 요구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부터 관계를 지탱하는 인프라까지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한다는 거다. 1인 가구가 중심인 사회에서 살려면 ‘타인과 잘 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가족 중심에서 타인과의 삶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변곡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더 연구하고 대책을 찾고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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