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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중앙일보 2016.02.24 00:28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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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논설주간

한 국가의 역량은 위기의 순간에 제대로 드러난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는 미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했고, 통일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북한 체제 붕괴를 언급했다. 과반수 국민은 박근혜 정부의 판단과 리더십을 믿고 따르고 있다.

 이제부터의 목표는 무엇인가. 강도 높은 제재를 통해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하는 북한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재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주변국, 특히 중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드 체계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향해 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를 도입하는 것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주권국가의 권리다. 중국이 시비할 일이 아니다. 미국은 X밴드 레이더가 북한을 향해 고정되니 중국이 염려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중국은 예민하다.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중국을 포위하는 한·미·일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완성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반대 의사를 표명해 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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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은 하나인데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의 성능과 용도는 제조사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가 지적한 대로 “사드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나서서 중국에 해명할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미사일 발사 5시간 만에 국방부는 쫓기듯이 미국과 사드 배치 협의에 들어간다고 선언해버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굳이 우리가 감당할 필요가 없는 리스크를 끌어안은 셈이다. 국방부가 선언한 지 12일 만인 19일 원-달러 환율은 37원 치솟아 1233.4원이 됐다. 5년8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지금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코리아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유커(遊客)의 한국 방문을 줄이거나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사업 인허가를 지연시키는 보복 조치를 취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퇴로를 막아버린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도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례적으로 “국가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제재를 하면서도 10만 엔 이하의 인도적 대북송금은 허용했다. 대화 국면에 대비한 것이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가세한 핵무장론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면 북한과 똑같은 신세가 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동시에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다. 한·미 동맹은 깨지고 주한미군은 철수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한국은 핵 발전 비중 세계 4위의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핵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은 전량 프랑스에서 사서 미국에서 저농축 처리해 들여온다. 핵무장을 하는 순간 우라늄 수입은 끊어지고 한국은 암흑천지가 된다. 이런 혼란을 감당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에 앞서 외교·안보 라인이 충분한 전략적 검토를 거쳤는지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한반도는 내부 구심력이 사라지면 국제 전쟁터가 된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은 동학농민혁명(1894년)이 발발하자 다급한 나머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일본군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와 청일전쟁(1894~1895)을 벌여 승리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마저 이기고 조선을 집어삼켰다. 김일성의 오판으로 시작된 1950년 6·25전쟁은 강대국의 전쟁으로 전환됐다. 남한은 7월, 북한은 12월에 군 통수권을 각각 미국과 중국에 넘겼다. 한반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비극의 반복을 막을 전략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박근혜 정부는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지만 중국과 미국에서는 북한과의 평화협정이 거론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했다. 94년 제네바 합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차관보는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활용해 북한이 협상장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핵실험 수일 전 북·미가 평화협정 논의를 한 사실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대화 국면에서 우리만 소외되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된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으르렁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북대화의 단절로 내부 구심력을 잃어버리면 한국의 운명은 강대국에 휘둘린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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