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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선릉, 회색 빌딩숲 속 녹색 퍼즐 한 조각

중앙일보 2016.02.24 00:10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도시는 변화무쌍합니다. 때로 앞면과 뒷면이 다르고, 그 이면에 예상 외의 모습을 감추고 있기도 합니다. 단편 도시는 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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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무역협회 건물에서 바라본 선릉의 모습. 고층 빌딩숲 사이 선릉이 초록색 섬처럼 보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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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선릉. [중앙포토]


인공위성에서 본 강남구 선릉(宣陵)의 모양은 전위적이다. 선릉은 치밀하게 직조된 격자 도시에서 이탈한 퍼즐 조각과 같다. 만약 선릉이 왕의 능침이 아니고 공동묘지였다면 도시 밀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개발업자들의 손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한 뼘의 녹지도 허용되지 않는 삭막한 도시에서 숨통을 조여 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선조들의 깊은 통찰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화재와 산책로 기능 교차하는 장소
철제 펜스와 좁은 보도로 안팎이 단절
완충공간 확보 등 다양한 쓰임 찾을때



  선릉이 만드는 전위적인 퍼즐 조각의 실체는 1970년을 기점으로 시행된 서울의 인구 분산 정책과 강남의 부동산 개발붐의 산물이다. 이호철의 소설처럼 1966년 ‘서울은 만원’이었다. 당시 서울 인구는 약 380만 명이었다. 현재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강남으로 유입된 인구가 증식한 결과다. 현재 ‘강남은 초만원’이다.

 어쩌면 조선왕조는 후손들의 땅에 대한 욕망이 이곳을 무자비하게 파헤칠 것을 예견하고 왕의 능침을 강남으로 정했으리라.

 그렇다면 도시는 선릉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선릉을 안팎으로 살펴보자. 지금 선릉은 빼곡한 도시에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봉긋한 능침과 고즈넉한 담장은 상가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된 도시일수록 유적지가 많고, 그곳으로 문화재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몰려든다. 이집트, 마야, 아스테카 문명의 피라미드 지역 인근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다. 그러나 선릉은 아니다. 선릉 주변에는 그런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다. 도시 미관 정비에 밀려 노점상이 깨끗이 정리된 지 오래다.

 게다가 전 세계 도시 중에서 선릉처럼 왕의 무덤을 바라보는 현대식 건물이 주변에 들어서는 건 드물다. 물론 선릉이 공동묘지였다면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왕릉을 숲과 조경으로 본다. 다행스럽게도 선릉은 그 문화재적 가치 덕분에 강력한 도시 개발을 견뎌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숲과 녹지를 누리게 되었다.
 
엄숙한 능, 주민 휴식 공간으로 변모

시민들이 선릉을 찾는 이유는 복잡한 도시 내부에서 풍성한 숲과 나무, 그리고 능의 더미와 역사를 즐기기 위함이다. 과거로의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선릉은 강남의 올레길이자 시민들의 산책로이다.

 문화재 연감에 따르면, 2015년 선릉의 한 해 이용자 수는 34만 명. 입장객 통계는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분류되어 있다. 선릉의 외국인 관람객 수는 4%, 나머지는 내국인이다. 연감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는 여기까지다. 이러한 빈약한 정보로는 문화재 지정 이후 45년간의 선릉 주변의 도시 변화는 물론이고 관람객들의 유형과 연령, 성별조차 알 수 없다. 이런 통계는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선릉을 찾는다. 차원을 이동하는 구부러진 공간처럼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면 감춰진 시간의 문을 열 수 있다. 도시의 공기는 선릉 입구를 경계로 미세한 막을 형성하고, 나는 그 경계에 서서 이쪽저쪽의 공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기도 한다. 아스팔트에 익숙했던 발은 이곳에서 다른 감촉을 느낀다. 선릉 안의 흙을 밟는 느낌은 벌어진 수박 속을 한입 베어 문 듯 청량하다.
 
 왕릉과 비릉 주변에는 석양·석호·망주석·장명등·무인석·문인석 등의 석물이 서있다. 무인석과 문인석은 하나같이 목이 짧은 3등신 정도의 체형으로 조각되었는데 만약 이 석상이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8등신으로 조각됐다면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석물들을 일일이 쓰다듬으며 500년 전 석공의 손길을 생각한다. 산책이 끝날 즈음엔 고층 건물들과 마주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선릉을 찾는 이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산책, 운동, 휴식 등 여가를 즐기려는 강남의 주민과 인근 사무실 근무자들이다. 이제 선릉은 엄숙한 왕의 능에서 인근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는 녹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강남의 인구밀도 대비 녹지 비율과 연관돼 있다.

 강남의 조밀한 도시구조는 더 이상 녹지율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선릉은 그들의 유일한 숨통이 됐다. 산책자들이 선릉에 모여드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이제 곧 들어설 서울역 고가 공원과 청계천이 좋은 공간임은 틀림없지만, 강남의 산책자들이 방문하기에는 거리상 유용하지 않다. 산책자들에게 거리는 그들의 시간과 비용의 가성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좋은 장소란 사용자 자신의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선릉 둘레길에서 공중 산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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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보도를 설치하면 울창한 숲 사이로 공중 산책도 가능할 것 이다. [스케치 곽희수]


쓰임(用)이란 인류를 진화시킨 가장 큰 원리다. 선릉은 이곳을 방문하는 산책자들에게 어떤 쓰임새를 갖고 있나. 이를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선릉이 산책의 공간이라면 길을 잘 닦고 나무와 녹지를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형식이라 해도 환경과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쓸모를 갖게 된다.

 선릉을 강남의 산책 명소로 본다면 도시 행정가들은 선릉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정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문화재로서의 관광과 공원으로서의 산책은 선릉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이다. 복수 이상의 목적과 동선이 한 공간에서 겹친다. 그만큼 프로그램이 풍부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선릉에도 둘레길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선릉 외부의 경계를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이는 2km 남짓이다. 선릉과 보도의 경계는 선릉의 울타리로 인해 협소하고 삭막하다. 과거 담과 대문은 집의 정신과 집주인의 조예를 상징하며 신중하게 다뤄졌다. 조선의 서슬 퍼런 제왕의 능침 공간이지만 선릉에는 담장이 없다. 공사장에서 쓰는 초록색 펜스가 선릉의 담을 대신한다. 이는 현대인에게 이웃과 이웃, 공공과 사적 공간에서 담과 대문에 대한 정신은 퇴화해 버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선릉의 사면에 접한 도로는 제법 번화함과 한가로움이 뒤섞여 흥미롭다. 그러나 선릉의 내부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다.

 도시 경계를 좀 더 유연한 사고로 바라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법하다. 예컨대 선릉의 울타리를 안쪽으로 조금만 옮기면 도로와 울타리 사이에 완충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조금 더 과감한 시도라면, 공중 보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선릉의 울타리에 한층 정도 높이에서 보도를 걸고 울창한 숲 사이를 걸으며 공중 산책도 가능할 것이다.(스케치 참조)

 지금 서울은 과밀한 인구와 수직적 도시 팽창으로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선릉을 비롯한 도시의 창발적 사용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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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곽희수


 하나의 장소와 물리적 공간에서 복수 이상의 쓰임을 모색할 때 도시는 지속 가능해진다. 시청 앞 광장은 원래 건축물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확보된 전면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은 정치 집회는 물론 지역 특산물 장터, 문화 이벤트, 겨울철 스케이트장까지 그 사용이 다양하다. 강남은 초만원이다. 비좁은 강남의 새로운 공간 사용법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건축가 곽희수(49)는 루트하우스(원빈 집), 테티스(고소영 빌딩)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모켄(MOKEN) 펜션 등으로 대중과 친숙한 건축가이다. 현재 이뎀도시건축 대표다. 서울시건축상·한국공간문화대상·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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