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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폐쇄된 개성공단, 어떻게 탄생했나요?

중앙일보 2016.02.24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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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가동이 한창이었던 때의 개성공단 야경. 밤에도 훤히 불을 밝히며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지난 2월 10일부터 전면 가동 중단된 상태다. 큰 손해를 보게 된 124개 입주 기업들의 근심도 깊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Q. 뉴스에서 연일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후폭풍을 다루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회사가 어떻게 북한에서 공장을 운영하게 됐는지, 어떤 회사들이 개성공단에 입주했는지 궁금합니다.

남한 자본·기술과 북한 노동력 합작…첫 제품은 스테인리스 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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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성공단은 북한의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3.3㎢(100만평) 규모로 조성된 공업단지입니다. 우리나라에 본사를 둔 124개 기업이 입주해 남한 800여 명, 북한 5만4000여 명의 인력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북한 땅에 있는 ‘남북 공동의 공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나 갈 수 없으니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공업단지인 셈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북한에 공장을 열고, 북한 주민들이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됐을까요.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 반세기 만에 열렸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문’입니다. 선언문으로 인해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졌고,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개성공단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두 달 만인 8월 22일, 현대아산과 북한은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를 하나로 합쳐 경제협력을 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북한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하면 우리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굳이 중국 등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얼어 붙었습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은 당초 계획보다 미뤄진 2003년 6월에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습니다.

공사 착공 1년 만인 2004년 6월 시범단지에 입주한 우리 기업은 15개였습니다. 그 해 말, 주방기기 생산업체인 ‘리빙아트’가 스테인리스 냄비를 출시했습니다. 개성공단의 남북 근로자가 생산한 첫 합작품인 셈입니다. 1000세트가 출고된 이 제품은 일명 ‘통일 냄비’로 불리며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이틀 만에 ‘완판(완전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개성공단 사업은 1년 뒤인 2005년 9월, 24개 기업이 분양을 마쳤습니다. 10년이 지난 현재는 규모가 더욱 커져 124개 업체에서 5만5000여 명이 넘는 남북 근로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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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기업 가운데는 노동력을 요구하는 섬유나 기계금속·전기전자 같은 제조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특히 속옷·양말에서부터 교복·등산복·신발까지 각종 의류·잡화를 생산하는 곳이 많습니다.

패션기업 신원은 전체 생산량의 20~30%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합니다. 부산에 본사를 둔 삼덕통산은 연간 생산량의 절반 수준인 300만 켤레의 신발을 개성공단에서 만듭니다. 틴틴 여러분이 입는 교복도 상당수 개성공단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이밖에 좋은사람들·인디에프 등 31곳의 의류업체에서 생산하는 ‘개성공단표 제품’이 국내 소비자들을 만납니다. 이들 업체가 1년 간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의류만 해도 약 220억원 규모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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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운영으로 인해 남측은 2005년부터 10년 간 32억6000만 달러의 내수 진작 효과를 봤습니다. 북측 역시 3억8000만 달러의 외화 수입이 생겼습니다. 124개 입주 기업에서 창출하는 연간 생산액은 4억7000만 달러(약 5800억원, 2014년 기준)에 달합니다.

70달러가 채 안 되던 북측 근로자 한 달 평균 임금도 그동안 한달 150달러로 뛰었습니다. 개성공단으로 인해 한 해 남북을 오가는 사람은 10만명이 훌쩍 넘습니다. 남북 교역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99.7%에 달하고요.

 반면 유일무이한 ‘남북 협력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정치·군사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공단이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2008년 북한은 남측 체류 인력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통행 시간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12·1조치’를 발표해 우리 기업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5·24 대북제재’를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하고, 공단 체류 가능 인원도 절반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습니다.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는 개성공단 방북이 일시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남북이 대립할 때마다 입주기업은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공장은 쉼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4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우리 정부가 강력 반발하자 북한이 북측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전원 철수시키고,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34일의 공단 폐쇄 기간 동안 입주 기업의 피해 규모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개월 넘게 문을 닫았던 개성공단은 그해 8월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며 가까스로 재가동됐습니다. 그 사이 입주기업은 납품이 늦어지면서 거래처가 배상을 청구하거나, 아예 거래처를 잃는 적지 않은 피해를 봤습니다. 생산 자체가 중단되면서 수출길이 막혔고, 해외 바이어의 신뢰를 잃은 점도 장기적인 부작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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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주로 중소기업이지만, 남북 경협 중단으로 큰 피해를 보는 대기업도 있습니다. 금강산 및 개성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건설사업의 총 사업자인 현대아산이 그 주인공입니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내에서 호텔과 면세점, 식당, 주유소 등을 운영해왔습니다. 현대아산이 지난해 개성공단과 관련해 올린 매출은 220억원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이중 매년 정기적으로 확보되는 매출은 100억원 선이었습니다. 현대아산의 전체 직원수가 228명인데, 그중 개성공단에서 23명이 근무해 왔습니다.

 현대아산은 1998년 6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이듬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대북사업 다각화 및 안정적 수익기반 구축’을 회사의 목표로 삼고 있지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남북 관계에 경영 실적이 휘청이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현대아산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중단 이후부터입니다. 연 3000억원에 육박했던 매출이 금강산 관광중단 이후부터 줄어들어 지난해 3분기엔 1073억4000만원으로 쪼그라 들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228억원에 달합니다. 2008년 이후 1조원이 넘는 누적 손실을 보고 있을 것이란 게 업계의 평가입니다.

 개성공단은 2013년 공단 재개 후 2년 5개월 만에 전면 중단 상황입니다. 두고 봐야겠지만, 아예 폐쇄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존폐의 기로에 선 개성공단의 기계음을 언제쯤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허정연·이수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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