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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명 가난 탈출 길 찾아준 영웅 “한국의 유산, 큰 영향”

중앙일보 2016.02.22 02:26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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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TED 콘퍼런스에서 앤드루 윤이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 화면에 나온 숫자는 아프리카 아동 3명 중 한 명은 발육 부진, 10명 중 한 명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는 4명 중 한 명뿐이란 설명이다. [사진 TED]


“영웅(Hero).”

TED서 만난 앤드루 윤


 17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 콘퍼런스에서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은 무대에 선 앤드루 윤(37·한국명 윤수현)을 이렇게 소개했다.

윤씨는 콘퍼런스 강연자 중 유일한 한국계다. 그가 10년째 아프리카에 거주하며 빈곤 퇴치를 위해 벌여온 활동이 이날 소개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윤씨는 강연에서 “전 세계 10억 명의 극빈층 대부분은 농부다. 인류는 이미 100년 전 이들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좋은 씨앗과 비료, 농사 기술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것을 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빈곤 퇴치의 해법이 없는 게 아니라 인류가 해법을 알고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윤씨의 강연을 들은 마커스 싱글스 미국 X프라이즈재단 최고경영자(CEO)는 그에게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윤씨는 미국에서 자란 동포 2세다. 명문 예일대를 우등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그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졸업 후 보스턴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학창 시절 아프리카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해 2006년 빈곤 퇴치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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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앤드루 윤. [사진 SKOLL]

 “케냐의 한 농가를 방문했는데 1에이커(약 4047㎡)당 농작물 2t을 수확했다. 한데 바로 옆집의 수확량은 4분의 1밖에 안 됐다. 가난으로 아이도 잃었다. 두 집의 형편이 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간단했다. 한 집은 좋은 씨앗·비료를 썼고, 다른 집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빈곤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문제, 전달(delivery)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윤씨는 자기 돈 7000달러를 털어 40개 농가에 대출을 해줬다. 지원을 받은 농부들은 각자 자기 생애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원 에이커 펀드(www.oneacrefund.org)’를 설립했다.

이 펀드는 농가 한 곳당 1에이커를 경작할 수 있도록 농사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고, 물류창고를 지어 좋은 씨앗과 비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농사 기술 교육도 한다.

 이 펀드는 설립 10년 만에 케냐·르완다 등 4개국의 40만 가구를 지원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지원받는 가구의 소득은 지원받기 전보다 평균 50%가 늘었다. 한 집당 5명의 가족이 있다고 하면 약 2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무작정 퍼주기의 결과는 아니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윤씨는 펀드 동료와 농부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줬다. 그 결과 대출 상환율이 99%에 달한다. 이를 통해 펀드 운영경비의 80%를 충당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윤씨는 “2020년까지 지원 규모를 현재의 세 배로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 비해 수입이 크게 줄었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다.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일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쉽게 충족시켜 준다”고 말했다. “내 삶에 ‘한국의 유산(Korean Heritage)’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케냐와 비슷했지만 이후 급성장을 했다. 함께 힘을 모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 얘기를 자주 한다.”

 기자가 “요즘 한국에는 ‘꿈과 미래가 없다’며 절망한 젊은이가 많다”고 하자 윤씨는 이렇게 답했다.

“내 경우엔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을 보며 매일 큰 감동을 받는다. 그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전문가가 되도록 한다. (틀에 박힌 일보다) 자신을 고무시키는(inspiring) 일을 찾으라고 격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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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캐나다)=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TED=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영문 머리글자다. 세계 각국 지식인들이 모여 다양한 분야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이다. 지난 15~19일 열린 올해 주제는 ‘꿈’이었다. 국내 언론 중에는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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