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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추위 버텨내 속이 더 꽉 찬 겨울배추

중앙일보 2016.02.19 00:01 Week&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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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배추가 자랍니다. 몇 해 전 4대 강 르포 취재를 위해 낙동강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강변 너른 밭에 겉잎이 축 늘어진 배추가 심겨 있었습니다. 냉해를 입어 수확도 하지 못하고 버려진 배추라고 생각했습니다. 근처를 지나는 농부 아저씨에게 이렇게 피해를 입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지으시다 이내 껄껄 웃으셨습니다. 이 배추는 2월에 수확해서 3월부터 출하하는 ‘겨울배추’라고 했습니다. 잎사귀 윗부분을 끈으로 꽁꽁 동여매고 혹독한 추위를 버텨낸 겨울배추는 가을배추보다 오히려 당도가 높고 속이 단단해 아삭한 식감을 자랑한다고도 했습니다.

한 해가 바뀌는 계절이 왜 하필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일까 생각해 봅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면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마치 끈을 동여맨 배추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바람 한 점 드나들 수 없도록 외투 자락을 여밉니다. 외투 자락이 찬바람과 싸우는 동안 외투 속 몸과 마음은 겨울배추의 속처럼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고 있을 겁니다. 북극의 냉기가 한반도를 덮쳐 각종 추위 관련 기록이 몇십 년 만에 경신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올 겨울도 이제 곧 지나갑니다. 한파가 강력했던 만큼 우리 마음속은 더 단단하고 아삭한 배춧속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다가올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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