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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소재 내추럴 스타일, ‘아름다운 마법’에 홀리다

중앙일보 2016.02.19 00:01 Week& 6면 지면보기
l 파리서 열린 샤넬 오트 쿠튀르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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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집과 녹색 정원, 푸른 하늘로 꾸민 샤넬 오트 쿠튀르 패션쇼장.


프랑스어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는 직역하면 ‘고급 맞춤복’ 또는 ‘최상급 손바느질’ 정도 된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오트 쿠튀르도 특정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받는 용어다. ‘쿠튀르 하우스’로 불리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를테면 최소 20명 이상의 장인으로 구성된 자체 공방에서 의류 제작의 모든 공정을 마쳐야 하고, 50벌 이상의 완전히 새로운 창작품을 해마다 1월과 7월 두 차례 파리에서 발표해야 한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옷은 ‘입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었다. 칼 라거펠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표현대로 “오트 쿠튀르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며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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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가공한 나뭇조각을 장인이 일일이 천에 수놓아 나무로 옷을 지었다.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그랑 팔레 전시장. 잘 가꿔진 드넓은 정원 한쪽에 은은한 나무향을 풍기는 목조 건물 한 채가 세워졌다. 세로로 패인 홈이 장식의 전부인 간결한 나무집에서 북유럽 정취가 물씬 배어났다. 정원과 관람석을 둘러싼 세트 가림막은 잉크를 풀어놓은듯한 파란색으로 칠해졌다. ‘태초에 하늘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파란색이었다.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기운이 영화 ‘트루먼쇼’의 무대를 연상시켰다. 이곳에서 샤넬의 2016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패션쇼가 열렸다.


나무로 자연을 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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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이번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얇게 가공한 나뭇조각을 꿰어 만든 드레스. 허리에 맨 스마트폰 파우치가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사령탑인 라거펠트는 이번 오트 쿠튀르 패션쇼의 테마를 ‘노르딕 무드(Nordic mood)’로 정했다. 북유럽식 정원은 그의 상상대로 꾸며진 자연의 모습이다. 음악과 함께 무대 뒤에서 남자 모델이 걸어나오면서 쇼가 시작됐다. 그가 정원 가운데로 나와 나무집을 가리키자 육중한 문이 열리며 ‘예술 작품’을 걸친 모델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다. 이들은 코르크 밑창이 달린 플랫폼 구두를 신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녹음이 짙은 정원을 거닐었다.

올해 여든 셋의 거장(巨匠)은 나무를 소재로 자연을 찬미했다. 나무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나무로 옷을 짓고, 구두를 만들었다. 나무를 가볍게 만든 소재로 자연이 주는 특유의 색감을 살려 새로운 패션을 빚어냈다. 나무 조각과 부스러기들로 자수를 놓아 장식을 만들고,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엮은 천으로 드레스를 지었다. 나무로 만든 나비와 튤(실크·나일론 등으로 망사처럼 짠 천)에 수놓은 벌은 드레스와 재킷 위에 살포시 앉았다. 전원 스타일 드레스에 작은 꽃을 수놓거나 나무로 된 새를 더하는 등 자연에 대한 찬사가 옷으로 구현됐다.


자연을 닮은 볼륨과 베이지

소재도 다양했지만 라거펠트는 “이번 컬렉션의 시작은 실루엣”이라고 설명했다. ‘뒤집힌 형체(inverted volumes)’를 가지고 이런 저런 실험을 하다가 둥그스름한 곡선을 찾아냈다. 봉곳한 계란형 소매의 짧은 재킷과 롱 펜슬 스커트, 짧은 트위드 재킷과 플레어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볼륨과 반전의 묘미에서 자연의 신비가 느껴졌다.

자연의 색인 베이지가 컬렉션을 빛냈다. 베이지는 샤넬 하우스의 상징과도 같다. 샤넬 창업자인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 여사는 ‘베이지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이 색을 아꼈다. 이날 선보인 80벌의 의상은 다양한 명도와 채도의 베이지로 표현됐다. 라거펠트는 에크뤼(표백하지 않은 천연 베이지색), 아이보리(상아색), 샌드(모래색), 도브(핑크 색조가 들어간 따뜻한 느낌의 회색), 퍼티(진흙색), 토프(회갈색 베이지), 모카(모카커피색) 등 베이지 팔레트의 다양한 색상을 활용했다. 모델들이 한 명씩 지나갈 때마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각양각색 베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는 브라운의 따뜻함과 화이트의 신선함을 넘나들며 완벽한 균형을 보여줬다.

이브닝 웨어로는 트레인(이브닝 드레스에서 길게 끌리는 옷자락)이 달린 바지, 라인스톤(인조 다이아몬드)으로 장식한 망토, 자수 장식이 달린 재킷 등을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기하학적 레이스 소재의 웨딩드레스였다. 시폰·가죽·구슬·라인스톤·나뭇조각 등을 한가득 수놓은 드레스에 모자와 트레인이 달린 재킷을 매치했다. 이질적인 재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만들어냈다.

오트 쿠튀르는 극도의 럭셔리이다. 디자이너의 독특한 개성, 장인의 섬세한 손 기술에 현대적인 감각이 요구된다. 라거펠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모델들은 허리에 벨트와 스마트폰 파우치를 멨다. 오트 쿠튀르 의상만큼이나 세련되고 화려한 파우치는 이날 컬렉션을 단숨에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게 만들었다. 라거펠트는 “15세기 귀족 부인들이 열쇠를 넣어 다녔던 파우치를 본떴다”고 말했다.


프레타포르테 위 오트 쿠튀르

해마다 파리에서 1월과 7월에 열리는 오트 쿠튀르 패션쇼는 3월과 9월에 열리는 프레타포르테(기성복) 패션쇼들과는 다르다. 프레타포르테도 창의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상상력의 깊이와 창작의 자유에 있어서는 오트 쿠튀르와 견주기 어렵다. 프레타포르테 의상은 패션쇼가 끝나면 약 5개월 뒤 각 브랜드 매장에 걸리지만, 오트 쿠튀르 의상은 고객이 주문하면 맞춤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옷은 쿠튀르 하우스의 아카이브로 편입된다.

전통있는 쿠튀르 하우스는 한 디자인을 한 명의 고객에게만 판매한다. 오트 크튀르 의상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어떤 브랜드는 첫 고객의 허락이 있을 경우 두 번째 주문을 받기도 한다. 오트 쿠튀르 의상은 가격표가 없다. 맞춤이기 때문에 주문에 따라 얼마든지 가격이 달라지고, 기존 패션산업의 셈법으로 가격을 산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벌에 최소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쿠튀르 하우스 디자이너들은 시즌마다 새로운 영감을 테마로 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일상복과 이브닝 드레스를 모두 내놓아야 한다는 점도 오트 쿠튀르의 규칙이다.

오트 쿠튀르는 1858년 찰스 프레드릭 워스 경이 파리 중심가에 문을 연 드레스 살롱에서 시작됐다.


오트 쿠튀르, 현실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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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파리 테러를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반영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스키아퍼렐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의 소중함’을 드레스에 담았다.(사진 왼쪽) 아틀리에 베르사체는 ‘강한 힘’을 수트로 표현했다.(사진 가운데) 인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발렌티노 드레스.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매우 비싼 옷인 오트 쿠튀르는 종종 현실 세계와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 시즌 컬렉션 가운데는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를 반영한 작품도 있었다. 프랑스 오트 쿠튀르 브랜드인 스키아퍼렐리의 디자이너 베르트랑 기용은 “이제는 친구들과 훌륭한 식사를 즐기는 것이 저항의 한 방법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파리의 레스토랑과 카페 등이 테러의 대상이 된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는 차 주전자나 웨지우드 도자기 장식을 한 재킷과 스커트 정장, 체리와 뿌리 채소를 프린트한 실크 이브닝 드레스, 은숟가락 등 커트러리로 뒤덮인 감색 드레스 등을 선보였다.

아틀리에 베르사체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강한 힘”을 표현했다.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힘’을 육체적인 힘으로 해석했다. 해체된 느낌의 ‘에슬레틱 쿠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남성적인 흰색 수트 위에 비대칭적인 연노랑·연초록·오렌지·하늘색의 스트랩을 단단히 맸다. 메쉬 소재의 보디수트와 티셔츠 위에 미니드레스를 겹쳐입기도 했다. 옷들이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발렌티노는 인간의 신체를 주제로 은은하고 개별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형태를 연구해 서정적인 감성이 배어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르마니 프리베도 중력을 거스르는 듯이 가벼운 실크와 오간자를 소재로 한 수트와 드레스를 발표했다


파리=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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