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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운명의 순간에 다가서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2016.02.17 00:28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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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논설위원

20세기는 진군(進軍)의 시대였다. 여러 나라가 혁명으로 봉건을 끝내고 근대화를 이뤘다. 이 찬란한 변화의 시기에 한민족은 기회를 놓쳤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한민족은 다시 불행을 맞았다. 분단이라는 역사의 천형(天刑)이다. 분단 극복에서도 한민족은 뒤지고 있다. 독일은 50년도 안 돼 통일을 해냈다. 남한 같은 분단국에서 통일은 일의적(一義的) 과제여야 한다. 지도자는 어떡해서든 통일을 향해 국가를 밀고 나가야 한다. 통일은 근대화의 지연을 만회할 역사의 축지법(縮地法)이다.

 통일 숙제로 보면 정권마다 환경이 달랐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몫을 해내는 것이다. 통일 여정은 400m 계주와 같다. 전력으로 질주하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baton)을 넘겨주는 것이다. 주자마다 “내가 우사인 볼트”라고 맘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빨라진다.

 48년 건국 이래 남한엔 10명의 주자가 있었다. 누가 빠르고 누가 늦었나. 북한이란 과제에 가장 처절하게 부닥친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는 집권 전부터 공산세력과 싸웠고 집권해선 전쟁까지 치렀다. 그는 북진통일을 원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실패했다. 대신 그는 강력한 한·미 동맹으로 적화통일을 막아냈다.

 통일이란 결국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남한의 자유민주 체제가 북한 공산 체제를 흡수하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가장 튼튼하게 기반을 다진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의 임기 중에 남한은 드디어 북한을 추월했다. 대북 응징의 결기도 대단했다. 73년 북한이 도발하자 박정인 백골부대장은 포격으로 북한 진지를 부숴버렸다. 76년 북한이 판문점 도끼만행을 저지르자 박정희와 미국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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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 속에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현상 유지에 매달렸다. 테러를 당해도 보복하지 않았다. 남북 특사 교환이 있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아니었다. 전 대통령은 남북한보다는 자신의 정권 관리에 주력해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동구 공산권 몰락과 독일 통일이라는 호재를 만났다. 그는 북방외교로 북한을 포위했다. 그러나 북한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렸다. 남북 총리회담과 기본합의서가 있었지만 결국 핵 개발을 숨기는 위장전술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은 북한에 순진하게 접근했다가 실패한 첫 번째 지도자다. 그는 북한에 우호적인 인사 2명을 핵심 요직에 앉혔다. 취임사에서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했다. 비(非)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아무 조건 없이 북에 넘겨주기도 했다. YS의 어설픈 대북정책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북한이 핵 개발을 선언한 것이다.

 김대중(DJ)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를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94~96년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벼랑 끝 위기에 처한 것이다. 만약 DJ 정권이 북한의 절박함을 겨냥했다면 한반도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DJ는 대신 햇볕정책을 선택했다. 정상회담 뒷돈으로 4억5000만 달러를 주었다. 이 돈은 핵 개발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에게 햇볕은 산소호흡기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핵 개발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쌀·비료·현금이 계속 북한에 흘러 들어갔다. 대화는 위장이었고 북한은 핵 도발로 치달았다. 2006년 드디어 북한은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것이었다. 그도 처음엔 대북교섭 유혹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곧 궤도로 돌아왔다. 5·24 조치는 80년대 이후 남한이 주도적으로 휘두른 첫 번째 채찍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도 한계가 있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 그가 더 강력하게 응징했다면 북한 정권은 충격을 받았을지 모른다. 장기독재 공산정권은 충격이 있어야 급변의 단초가 생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초엔 남북대화 가능성에 집착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도 곧 냉엄한 현실로 돌아왔다. 북한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부담과 희생으로 보면 개성공단 폐쇄는 5·24보다 강력한 제재다.

 이제 북한이라는 비극은 마지막 장(障)으로 달려가고 있다. 김정은은 공포와 광기에 갇혀 있고, 남한은 모든 문을 닫았다. 이제야말로 체제의 본질과 본질이 부닥치고 있다. 본질과 본질이 마주칠 때 변화가 터졌음을 세계사는 증명하고 있다.

 1871년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다.” 이 나라의 많은 대통령이 옷자락을 놓쳤다. 박근혜는 그것을 잡을 수 있을까. 400m 통일 계주에서 그는 우사인 볼트가 될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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