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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양 후 스키로 '한국'을 얻다…"내게 생명준 나라"

중앙일보 2016.02.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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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글로리아 클링. 지난 20년간 그는 이 이름으로 살아왔다. 올해 22세가 된 그는 이제 '이미현'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199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 살 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 이미현은 그가 입양되기전 복지 기관에 맡겨질 때 기록부에 적힌 이름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낸 이미현은 지금 강원도 평창에 있다. 그의 직업은 스키 선수.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단기 스키 강사로 일했던 그는 18일 이 코스에서 개막하는 2016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스키·스노보드 월드컵 슬로프스타일 경기에 한국대표로 출전한다.

미국인 재클린 글로리아 클링은 지난해 12월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스키협회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자 '한국인 이미현'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직 우리말이 서툰 그는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내게 생명을 준 나라의 대표로 뛴다는 건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스키 선수로서 목표가 더 확고해졌다. 좋은 전환점이 됐다."


그가 스키를 처음 탄 것은 3세 때였다. 스키 강사였던 미국인 양아버지를 따라 스키를 처음 신어봤다. 슬로프스타일 스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9세 때였다.

"어느 날 장애물이 있는 슬로프스타일 스키장에서 스키를 탔다. 이 장면을 지켜본 아버지가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며 격려해준 게 슬로프스타일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그의 얼굴은 눈 부위를 제외하곤 까무잡잡하다. 스키장에서 햇볕을 쐬며 하루에 7~8시간 씩 열심히 훈련을 한 탓이다. 스키를 타기 위해 그는 중학생이던 15세 때부터 직접 돈을 벌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수영장 청소도 하고, 햄버거 가게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미현은 "다른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냐' 고 하지만 내겐 스키가 삶의 전부였다. 스키를 타면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도 있다"면서 "스키를 타다보면 자유로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스키를 탔다"고 말했다.

2012년 경기 도중 오른 다리가 부러져 큰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스키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현은 지난해 한국 스키 코치의 제안을 받고 고국에 돌아왔다. 한 살 때 입양된 뒤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뒤에도 틈틈이 스키 강사로 일하면서 훈련을 거듭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삼겹살. 이미현은 "김치찌개가 맵긴 하지만 '많이 많이 라이스(밥)'와 함께 먹으면 최고"라고 말했다. "커피 주세요" "뜨거워요" 같은 간단한 우리말은 할 줄 안다.

이미현은 16일 열린 대회 공식 연습에서 코스에 설치된 6개의 장애물을 익히는데 중점을 뒀다. 연습 첫 날이었던데다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 반(540도)을 비틀어 도는 기술을 수차례 시도했다.

이미현은 지난달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맘모스 마운틴에서 열린 FIS 레이스 대회에서 3위에 올라 월드컵에 출전할 자격 포인트를 땄다. 이미현이 슬로프스타일 종목 월드컵에 출전하는 건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한국 여자 선수가 월드컵 슬로프스타일 경기에 출전하는 것도 처음이다.

구창범 대한스키협회 프리스타일 스키 전담팀 담당관은 "이미현은 쾌활한 성격으로 동료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이끈다"면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꿈나무 육성팀 소속 선수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뒤 국제대회 경험만 더 쌓으면 몇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올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인 티릴 크리스티안센(노르웨이), 2위 유키 쓰보타(캐나다) 등 프리스타일 스키 슬로프스타일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두 출전한다. 현재 이미현의 FIS 랭킹은 60위. 당장 세계 정상을 노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미현은 "한국 대표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겐 꿈이 하나 더 있다. 평창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만나는 것이다.

이미현은 "언젠가는 꼭 부모님을 만나서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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