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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e판결] 주사기 재사용 집단감염… 수천만원 배상 판결

중앙일보 2016.02.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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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가 재사용 주사기로 각종 주사를 놔 환자들에게 박테리아 감염 등을 일으키는 것을 방치한 의사에게 억대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김종원)는 “의사 A씨는 피해 환자 14명에게 각각 1000~3000만원씩 총 3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문제가 된 의원은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I 의원.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2009년부터 간호조무사 B씨와 함께 의원을 운영하며 산부인과 진료 외에 관절통증치료, 추나요법 등을 함께 했다.

관절치료를 도맡았던 건 간호조무사 B씨. B씨는 허리·어깨·무릎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엑스레이를 찍고 척추 통증 부위를 압박하는 ‘추나요법’도 했다. 또 주사기를 이용해 통증 부위에 다양한 주사제를 투여했다. 무면허의료행위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B씨가 이미 사용한 주사기를 반복 사용해 왔던 것. 그 결과 2012년 4월~9월 동안 주사를 맞은 환자 243명 가운데 김모씨 등 61명에게서 화농성 관절염, 마이코박테리아 감염 등 집단 감염증이 발병했다.

의사 A씨는 B씨가 진료한 환자들을 자신이 직접 진료한 것처럼 가장해 진료기록부를 허위 작성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료를 지급받는 등 B씨의 범죄에 가담했다. 의료법위반 등의 혐의로 I의원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간호조무사 B씨는 2012년 10월 자살했고 A씨만 기소됐다. A씨는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등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환자들에게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 혐의(업무상 과실치상)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A씨가 직접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원은 의사 A씨의 민사적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미개봉 상태의 주사기와 주사제 샘플 검사에서는 어떠한 균도 검출되지 않았으므로 B씨가 주사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병원균이 침투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병원 냉장고에는 주사제가 음료수와 함께 보관돼 있을 정도로 약품 보관상태가 불량했고 쓰다남은 약물도 발견됐다”며 “정황상 주사제를 여러 번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병원균이 침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동일한 주사기를 이용해 여러 부위에 주사한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 외부 환경에 존재하던 병원균이 주사침과 함께 환자의 피부 내로 주입됐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A씨는 “피해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의 진료 과정에서 감염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한의원 등에서 진료받은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과관계의 추정을 뒤집긴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만, 같은 주사를 243명 중 61명에게서만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으로 볼 때 환자들의 체질적인 이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A씨의 손해배상책임은 70%로 제한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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