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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탐험(4)] 김정일의 유산

중앙일보 2016.02.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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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0년 11월 함흥시 2·8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시찰하는 모습.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최고권력자가 됐다. 준비가 덜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앞만 보고 가야지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김정일은 많은 유산을 남겼다. 어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멘토를 엄선해 붙여주고 후계자 수업을 받도록 했지만 최고의 멘토는 자신이었다. 멘토들은 교과서적인 얘기를 할 수 있어도 권력의 속성을 말할 수 없다.

김정일의 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선군정치다. 김정은이 지금 핵·미사일을 움켜쥐고 한반도를 긴장시키는 것도 그 유산의 그림자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잡자마자 내우외환을 맞았다. 안으로는 홍수·가뭄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밖으로는 제1차 핵위기의 여파가 있었다. 그 때 김정일에게는 체제 유지가 최대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군(軍)을 우선한다’는 선군정치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선군정치는 김정일 시대의 슬로건이었다. 김정은 시대가 됐는데 선군정치가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정책에서 방점은 경제에 두고 싶었다. 그가 “인민의 허리띠를 더 이상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인 선군정치가 너무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을 따라 선군정치를 이끌었던 세력들이 여전히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그 세력은 조선노동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다. 김정일은 생전에 조직지도부를 통해 북한을 이끌었다. 조직지도부가 선군정치의 이념적 틀과 실천방식을 만들었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는 즈음인 1973년에 만들어진 3대혁명소조운동의 엘리트들이 조직지도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3대혁명소조운동은 노동당과 내각의 젊은 일꾼들과 대학 졸업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만 명의 젊은 엘리트가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추동하는 3대혁명소조라는 이름으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 파견되었다. 이들이 세대교체를 통해 김정일의 지지 세력이 됐고 그의 손발이 되어 김정일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과거 냉전시절 진영 논리에 젖은 사람들로 개혁·개방보다는 중국·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가 북한의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정인에게서 스위스 유학시절 알게 모르게 체득한 자본주의 냄새를 빼려고 한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은 시대에서 그의 조력자이자 걸림돌이다.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자기 세력을 만들기 이전까지는 이들을 통해 북한을 다스려야 한다. 한 때 2인자 소리를 들었던 장성택도 조직지도부를 넘지 못했다. 지금 2인자 역할을 하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도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지도자의 가장 큰 도전은 아버지의 지지 세력이다.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내세운 것도 조직지도부의 작품이다. 미래 보다는 과거·현재에 머무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미래다.

최근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김정일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집권 5년차에 접어들었고 공포정치로 권력을 장악한 것 같지만 자신이 만든 권력이 아니라 조직지도부가 만들어 준 권력이다. 지금 북한은 살아있는 김정은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김정일이 통치하는 것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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