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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대학털이, 명문대 중퇴생의 추락 왜

중앙일보 2016.02.16 02:10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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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0년 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던 부모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훔친 책의 주인들처럼 한때 저도 ‘청소년 문화사업’을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언제나 빈손이었습니다.”

청소년 문화사업 꿈 늦깎이 대학생
동생 빚 수천만원 떠안으며 꼬여
과외로 갚았지만 휴학 초과로 제적
1100만원 금품 훔쳐 세 번째 구속

 명문대생에서 절도범으로 전락해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김모(44)씨가 지난 4일 어렵사리 입을 뗐다.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동안 8개 대학 캠퍼스를 돌며 지갑과 전공서적 등 11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는 게 그의 혐의다.

 김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얘기했다.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고교 졸업과 동시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3년간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진학을 결심, 스물네 살 때 늦깎이로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청소년들의 문화체험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꿈도 생겼다.

3학년을 마치고 1년간 동남아로 봉사활동을 떠났는데 그게 대학 시절의 마지막이 될 줄은 당시엔 몰랐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동생의 사업 실패로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게 되면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휴학하고 과외시장에 뛰어들었다. 한 번에 10명을 맡아 가르치며 5년간 일한 끝에 5000만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러나 학교는 2003년 휴학 기간 초과를 이유로 김씨를 제적했다.

서른둘에 어디도 속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졌습니다. 절망감에 집을 떠나 찜질방과 PC방을 전전했죠. 그러다 우연히 대학 캠퍼스의 빈 학생회실에서 소법전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책을 들고 뛰쳐 나왔고, 헌책방에 팔아 손에 5000원을 쥐었습니다. 양심을 팔아 넘긴 값이었죠.”

 김씨는 첫 범행 이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 대학을 돌며 책· 전자기기를 훔쳤다. 동아리실에 보관된 회비 등 거액의 현금을 한번에 챙기기도 했다.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2006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김씨는 마음을 다잡고 2년간 과외로 돈을 모았다. 학교가 그리웠고, 다시 공부를 마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동생이 결혼하면서 2년간 모은 2000만원을 동생 신혼집 마련에 보태야 했다.

결혼을 못한 저 대신 동생이라도 자식 도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형 노릇을 해 뿌듯했지만 저는 다시 빈손이었습니다.”

 나이가 마흔 가까이 돼 과외도 예전 같지 않자 김씨는 습관처럼 ‘대학털이’에 나섰다. 2013년 구속돼 이듬해 10월 출소한 김씨는 지난해 8월 또다시 범행을 저지르다 지난달 세 번째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명문대 입학 후 모든 게 순탄할 줄 알았으나 삶이 내 맘같이 흘러가지 않았다”며 “이번에 죗값을 치르고 나가면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책을 훔친 마음의 빚을 꼭 갚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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