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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로 느끼고 냄새 맡는 휴머노이드의 '최종 병기'

중앙일보 2016.02.16 01:49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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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인 영화 ‘터미네이터 2’의 한 장면.


1984년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는 사람과 똑같은 모습의 로봇을 등장시켰다. 터미네이터가 사람 모습을 빼닮을 수 있었던 건 딱딱한 강철 골격을 덮은 ‘전자피부’ 덕분이다.

[궁금한 화요일] 첨단기술 집합체 ‘전자피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전자피부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온도를 감지하고 냄새를 맡는 전자피부가 개발되는 등 발전 속도도 빠르다. 웨어러블 기기, 헬스케어 등 다방면에 활용될 수 있어 이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지난해 과학 기술 10대 뉴스 중 하나로 전자피부를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냄새 맡는 전자피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숭실대 연구팀을 찾아 전자피부에 대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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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2014년 개발한 전자피부. 로봇 손에 장갑처럼 씌울 수 있다. 사람의 손처럼 촉감을 느끼고 반응도 한다. [사진 서울대]


 지난 4일 숭실대 형남공학관 118호. 80㎡ 남짓한 전자피부 연구실에는 화학·물리·전자공학 등에서 사용하는 이종 실험장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박상식 연구원은 “화학과 전자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이종교배해야 전자피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피부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전자센서와 전기선에 실리콘을 입혀 합성한 ‘인공피부’다.

인간의 피부가 땀구멍 등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장벽 역할을 하는 동시에 촉각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면 전자피부는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모두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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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가닥의 그래핀 전기선이 삽입된 전자피부는 투명한 젤리 같았다. 힘을 줘 구부려도 곧바로 원상태로 복원됐다. 손가락으로 잡고 길게 늘여도 마찬가지였다.

김소영 연구원은 “사람 피부와 가장 비슷한 실리콘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자피부에 쓰이는 실리콘은 피디엠에스(PDMS·Polydimethylsiloxane)다. 규소와 산소로 합성해 만든다. 수백 도의 온도를 견디면서도 쉽게 휘어지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김 연구원이 톨루엔 한 방울을 전자피부 위에 떨어뜨리자 모니터의 붉은색 그래프가 위로 치솟았다. 전자피부가 톨루엔을 감지해 반응한 것이다. 톨루엔은 새집증후군의 원인 물질로 인체에 유해하다.

 “모든 물체는 각각의 전기용량(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양)을 갖는데 유해가스도 독특한 전기용량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전기용량을 전자피부가 구별해 유해가스를 식별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김도환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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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피부를 활용해 만든 심박 측정기. 몸에 붙이면 자궁 속 태아의 심박수도 감지할 수 있다.


 숭실대가 개발한 전자피부는 12가지 물질을 구분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인간의 후각세포는 2000~4000가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전자피부의 후각 능력은 인간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자피부가 인간 피부를 뛰어넘은 영역도 있다. 바로 온도 감지다. 현재 개발된 전자피부는 0.1도의 온도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실리콘은 수백 도 이상의 온도도 견딜 수 있어 물이 끓는 온도 이상에서도 전자피부는 작동한다.

여기에 비하면 인간 피부의 온도 감지 능력은 한참 뒤진다. 지역과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간은 대략 섭씨 25도 이상에서 덥다는 느낌을 받을 뿐 정확한 온도를 가늠할 순 없다.

미국화상학회의에 따르면 인간의 피부는 60도 이상의 온도에 8초 이상 노출되면 단백질이 파괴돼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

 전자피부 연구에선 한국도 선진국에 속한다. 오감 중 시각과 미각을 제외한 청각·후각·촉각을 인지하는 전자피부는 국내 개발이 끝났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건 청각 감지 전자피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지난해 11월 소리를 인식하는 전자피부를 만들었다. 소리(음파)는 일종의 공기 압력이다.

인간의 귀는 이런 압력을 감지해 소리를 인식한다. 전자피부가 소리를 감지하는 원리는 귓속 고막과 비슷하다. 미세한 공기 떨림을 감지할 정도로 민감도를 높이면 된다.

고현협 UNIST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는 “새로 개발한 전자피부는 소리로 인한 공기 진동을 스마트폰 마이크보다 더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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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진단과 약물 전달을 위한 전자피부. 나노 입자가 터지면서 피부를 통해 약물이 흡수된다.

 ◆전자피부 활용 분야=전자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다. 최근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별할 수 있는 등 점점 인간의 피부와 비슷해지고 있다.

이런 전자피부는 로봇은 물론 IT 및 웨어러블 기기, 의료 및 헬스케어 등 활용 분야가 넓다. 우선 인간과 비슷한 휴머노이드를 만들기 위해선 전자피부가 필요하다.

전자피부를 입은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면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화학물질 저장소나 핵폐기물 저장고 작업 등에서 일을 시킬 수 있다. 위험 물질이 새어 나오더라도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몸에 붙이는 휴대전화와 심박측정기를 비롯해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도 만들 수 있다.

박상식 연구원은 “전자피부는 쉽게 휘어지고 몸에 붙일 수도 있어 이를 활용하면 가까운 미래에 몸에 꼭 맞는 ‘맞춤형 IT 기기’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현협 교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몸에 붙이는 보청기나 독거노인을 위한 맥박 등 생체정보 인식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전자 등 기존 기업들이 전자피부 개발에 적극적인 건 이런 잠재력 때문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그래핀(Graphene)=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얇은 막 형태의 나노 소재다.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2004년 처음 흑연에서 분리했고, 2010년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구리보다 전기가 150배 잘 통하고 강철보다 200배 강하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세 가지 조건

1.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걸어야 한다.

2.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3.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지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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