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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신화가 된 윤동주…80쪽 대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중앙일보 2016.02.16 01:37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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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 역을 맡은 강하늘(왼쪽)과 그의 고종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열사 역의 박정민.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의 소박한 삶을 존중해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박정민이 윤동주의 시가 적힌 종이를 말아 쥐고 있다. [사진 전소윤(STUDIO706)]


17일 개봉하는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는 스크린 최초로 시인 윤동주(1917~45)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동주’ 강하늘

영화는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 열사(1917~45)의 관계를 통해 어두운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아간 두 청춘의 고난과 소망을 흑백 화면 속에 잔잔하게 담았다. ‘동주’에서 각각 윤동주와 송몽규를 연기한 젊은 배우 강하늘(26)과 박정민(29)을 만났다.

강하늘은 ‘동주’ 촬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윤동주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솟구쳤던 흥분과 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고민으로 바뀌었다. “시인 윤동주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연기로 보여줘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걸까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나중엔 80쪽 남짓한 시나리오가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죠.”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막상 촬영하면서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똘똘 뭉쳐 뜻 깊은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윤동주를 어떤 인물로 그리려고 했나.

 “70년 전 세상을 떠난 역사 속 인물, 아름다운 시를 남긴 천재 시인…. 교과서의 거창한 말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면서 순간순간 흔들리지 않았을까. 시인 윤동주를 ‘한 사람’으로 숨 쉬게 하고 싶었다.”

 -극 중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가 각별하다.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생애 첫 열등감과 질투를 불러일으킨 존재다.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윤동주였는데, 신춘 문예에 당선된 건 송몽규였다. 그래놓고 송몽규는 시대가 요구하는 혁명가가 되려 했다. 윤동주는 평생 송몽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미운 정까지 쌓여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 것 같다.”

 -윤동주의 시 세계를 가리켜 흔히 ‘부끄러움의 미학’이라 설명한다. 그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촬영장에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데, 윤동주는 자신을 못난 존재로 여긴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애가 충만했던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기 때문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한다고 할까. 그 점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나 자신을 깎아내려야만 올라갈 힘이 생긴다(웃음).”

 -윤동주 시인의 육촌동생인 가수 윤형주씨와의 인연도 각별한 것 같다. 영화 ‘쎄시봉’(2015)에선 윤형주 역할을 맡았고.

 “캐스팅되고 윤형주 선생님께 전화드렸더니 윤씨로 성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웃음).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 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윤형주 선생님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셨다. 이 모든 인연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윤동주는 시를 너무 사랑해 어떻게든 시를 써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강하늘에게 연기란 .

 “나보다 훨씬 뛰어난 배우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열등감,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부담이 지금껏 내게 가장 큰 힘이 됐다. 실제 작품 할 때마다 배우로서 한계를 느낀다. 내게 연기란 나 자신을 몰아쳐서 도달할 수 있는 극기(克己)의 과정인 것 같다.”

 - 순수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빛나는 배우다.

 “내가 생각하는 순수함이란 자기 안에 어떤 기준이 있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기준을 바꿀 수 없는 올곧음 같은 거다. 반대로 요령을 부리거나 머리 굴리는 역을 맡으면 연기가 잘 안 되고 고민이 많아진다.(웃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란 그저 착해 빠지기만 한 게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치사하고 속 좁은 감정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삶 전체를 봤을 때 더 값진 것 같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몽규’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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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연희전문학교 음악 수업 장면. 윤동주(왼쪽)와 송몽규(가운데).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신인 박정민에게 ‘동주’는 각별한 작업이었다. ‘파수꾼’(2011)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뒤 자신이 배우로서 소질이 있는지 고민하던 중 ‘동주’를 만났다. 소속사(샘 컴퍼니) 선배 황정민이 제작진에 그를 적극 추천한 것이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 ‘왜 이준익 감독 같은 분이 나처럼 검증 안 된 신인을 원하겠나’하는 생각에 한동안 믿지 못했어요. 그 이야기가 진짜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정말 기뻤죠.”

윤동주의 소박한 삶을 존중해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이지만, 그에게 ‘동주’는 “만드는 과정이 무척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송몽규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나.

“시대에는 ‘정의’로 답하고, 윤동주에게는 ‘형의 마음’이었던 청년이다.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에 묘사된 송몽규 열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 한편으론 늘 형의 마음으로 윤동주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청년이기도 하다. ‘너는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게’란 대사처럼, 자신을 위험으로 내몰면서도 윤동주만큼은 끝까지 보호하려 하니까.”

-실존 독립운동가를 연기했다. 부담이 컸겠다.

“물론이다. 잘못된 해석으로 그분들의 숭고한 삶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두 달간 서점과 카페를 오가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때 공부한 내용과 내 해석을 필기했던 대본과 노트를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나태해질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보며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촬영 전 홀로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주·송몽규의 생가와 묘소를 방문했다고 들었다.

“내가 원래 역사 의식이 투철하거나, 뛰어난 공감 능력이 있었더라면 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분들이 어떤 풍경을 보면서 자랐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어 그곳으로 떠났다. 면세점에서 산 소주로 두 분의 묘소에 고사도 드렸다.”

-직접 가서 보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두 분이 이렇게 잊어졌다는 사실이 슬펐다. 고작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찾아간 내 자신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소리 내서 ‘송구합니다. 두 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갑자기 까마귀 수십 마리가 날아와 주위를 돌며 울어대더라. 한국에 돌아와 이준익 감독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중국에선 까마귀가 길조니 좋은 징조’라고 하셨다.”

-송몽규가 일본 형사 앞에서 자신의 죄목을 시인하며 오열하는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그 장면을 연기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송 열사의 묘소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사무치게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면목 없지만, 송 열사가 날 도와주셨다는 생각에 오케이 사인이 나도 울음이 멎질 않았다. 나중엔 감독님이 내 곁에 와서 함께 엉엉 울어주셨다. 고마움과 후련함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 ‘동주’에서의 담담하면서도 선 굵은 연기로 보다 많은 관객에게 이름을 알리게 될 것 같은데.

“그런 기대로 흔들리기보다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 중이다. 그동안 기대를 좀 했었지만 잘 안 됐으니까(웃음). 한편으론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는 게 무섭기도 하다. 독이 될 것 같아서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 인생처럼, 조금씩 배우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 편이 내게 더 어울린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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