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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달러 들고 미국 간 아빠…스노보드 만점소녀 만들다

중앙일보 2016.02.16 01:12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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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이 14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겨울 유스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점프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IOC, 클로이 김 SNS]


소녀는 웃음이 많다. 환한 얼굴처럼 성격도 밝다. 그러나 높이 6.7m, 길이 170m 가량 되는 반 원통형 슬로프 앞에만 서면 눈빛이 달라진다. 화려한 점프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슬로프를 자신의 세상으로 만든다. 스노보드 스타로 떠오른 재미동포 2세 클로이 김(16·한국 이름 김선)이다.

유스올림픽 ‘하프파이프’ 1위, 16세 미국 동포 클로이 김


 2000년생 클로이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halfpipe)를 타기만 하면 ‘작은 새’로 변신한다. 반 원통형으로 된 슬로프의 양쪽 벽을 오가며 점프와 회전을 하는 이 종목에서 새로운 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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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는 96.5점을 받아 금메달을 땄다. [사진 IOC, 클로이 김 SNS]

그는 지난 6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에서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종목 100점 만점을 받았다. ‘백투백 1080’이라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백투백 1080은 한쪽 슬로프에서 공중 3회전을 한 뒤 반대쪽 슬로프에서도 3바퀴를 연속해서 도는 고난이도의 점프 기술이다. 남자 선수들도 하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데 클로이는 여자 선수 최초로 이 기술을 성공했다. 기본동작·난이도 등 5개 평가 항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클로이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지난 1일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펀에서 열린 겨울 X게임에서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이룬 클로이는 14일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겨울 유스올림픽에서 96.5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엔 백투백 1080을 선보이진 않았지만 깔끔한 점프 동작과 완벽에 가까운 회전 기술을 선보이며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의 정유림(17·수리고)은 86.5점으로 3위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태어난 클로이는 가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통해 성장했다. 아버지 김종진(60) 씨는 클로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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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종진씨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클로이. [사진 IOC, 클로이 김 SNS]


26세이던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씨는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공과대학을 다녔다. ESPN은 ‘20대 초반 800달러(약 96만원)를 들고 미국에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고 김 씨를 소개했다.

 클로이는 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취미 삼아 스노보드를 타고 배웠다. 그런데 클로이가 스노보드에 재능을 보이면서 김 씨의 일상이 바뀌었다.

6세 때 전미 스노보드연합회 챔피언십에서 3위에 오른 클로이는 8세 때 아예 스위스로 스키 유학을 갔다. “딸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던 김 씨는 직장도 그만 뒀다.

클로이와 김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숙소가 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프파이프 경기장이 있는 프랑스 아보리아의 스키장까지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김 씨는 하루 수백 ㎞를 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클로이는 “아빠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로이는 10세부터 지역 클럽에서 체계적으로 스노보드를 배우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눈이 오지 않는 여름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자세를 익혔고, 공중 회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수영장에서 다이빙 훈련도 했다.

그 덕분에 13세에 미국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에 뽑혔다. 그리고 2014년 월드 스노보드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클로이는 “스키장을 오가는 게 정말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난 꾹 참아냈다. 그 결과 지금은 스노보드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노보드 스타로 뜬 클로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ESPN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스포츠 스타 25명’으로 리디아 고(뉴질랜드·골프), 세리나 윌리엄스(미국·테니스) 등과 함께 클로이 김을 뽑았다. 주간지 타임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중 한 명으로 그를 뽑았다.

지난 2014년 클로이가 거주하는 LA 시의회는 ‘클로이가 LA의 명예를 드높였다’며 행사를 연 3월19일을 ‘클로이 김의 날’로 지정했다. 클로이는 이번 유스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단 기수도 맡았다.

 클로이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는 나이가 어렸던 탓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만큼 2년 뒤 열릴 평창 겨울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클로이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의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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