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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출연료 2만원, 알바가 더 낫죠"···어느 대학로 배우의 고백①

중앙일보 2016.02.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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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 배우에요. 영화 배우는 아니고, 대학로 연극 배우.

어떤 작품 했냐고요? 음… 10개 정도 했는데, 말해도 모르실 거에요. 제목에 연애, 난 놈, 아찔한, 대박, 풋사랑 등이 들어갔던 거 같아요. 대충 조합해도 맞을 거에요 크크. 저도 가물가물해요.

지금은 작품하는 거 없어요. 다음달 들어가는 거 연습중이에요. 작년 연말까지 하고 쉬었죠. 배우는 이게 안 좋아요. 계속 엇갈리게 겹치면서 해야 수입이 끊기질 않는데….

연습 할땐 당연히 땡전 한푼 없고, 공연하는 와중엔 또 못 받고, 작품 끝나고 기껏 한 달쯤 지나야 정산돼요. 그거라도 제때 주면 고맙지만.

아, 그러고 보니 완전히 쉰 건 아니네요. 작년 12월에 아동극 하나 했어요. 그 제작사랑 1월에도 하나 했고요. 하루 두번 공연해요. 오전 10시반, 11시40분. **구민회관에서 했어요.

한 달에 45회쯤 하고 90만원씩 받았아요. 회당 출연료로 따지면 2만원 정도인데, 제 경력치곤 적은 편이죠. 대학로 연극 할 때는 최소 3만원씩은 받거든요. 그래도 오전만 하면 되니깐 알바하는 마음으로 했죠.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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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요? 아동극이 그렇죠 뭐. 아이들 비유 맞추고, 신나게 하고 그러면 되죠.

글구 저 연기 전공 아니에요. 그게 콤플렉스죠. 전 지방 출신인데, 경기도 의정부에서 2011년 봄에 올라왔어요. 전문대 만화창작과 다녔고, 중퇴했어요.

군 제대하고 ‘이렇게 썩으면 안 되겠다’ 싶어 서울로 튀었죠. 고등학교때 말빨도 있고, 춤도 곧 잘 춘다는 얘기 들었거든요. 나라고 연기자 못 할 게 뭐냐 싶었죠. 인물도…. 원빈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처음 서울 와선 핸드폰 대리점에서 일했어요. 한 달에 300만원 정도 벌었죠. 건대입구역 원룸에 살았고, 저녁엔 연기학원 다녔어요. 그때가 그립네요. 돌이켜보면 가장 등 따숩던 시절이에요. 경제적으로 안정됐고, 꿈도 있었으니깐요.

대학로 오게 된 건 학원 선생님 권유였어요. ‘아시는 분이 대학로에서 극단 운영하고 있는데 한 달에 50만원 밖에 못 받지만, 거기서 연기·스태프·기획 다 경험할 수 있으니 어떠겠느냐’고. 하겠다고 했죠. 백도 줄도 없는데 걸리면 걸리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장 휴대폰 대리점 그만두고 대학로 부근 고시원으로 들어갔죠.

두 달 쯤 지났나, 2011년 11월이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대장이 “내일 모레 가능하지?”라는 거에요. 아, 대장은 극단 대표 말하는 거에요. 제작자 겸 연출가 겸 극작가였죠. 영세하니깐, 혼자 다 하죠. 어리둥절했지만 이때다 싶었죠. 대본은 얼추 다 외워놓고 있었어요. 후에 들으니 대장이 계속 돈 안 주니깐, 선배가 때려쳐서 저에게 기회가 온 거였어요.

리허설 한번 없이 그냥 무대 올랐어요. 미친 듯이 연기했죠, 어차피 정신병자역이라 ㅋㅋ 나쁘지 않았죠. 다들 ‘제법인데, 네가 형보다 낫다’고 했어요. 팬도 생기고, 연기 천재 소리도 듣고. ‘아, 이 맛이구나, 이렇게 풀리는구나, 해 볼 만하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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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작품도 출연했어요. 근데 대장이 어느 때부터 월급 50만원도 안 주는 거에요. 넉 달 정도 밀리니, 매달 21만원 내야 하는 고시원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죠. 극단 사무실에 매트리스 깔고 살았어요.

제가 그때 조연출도 했거든요. 어떤 형이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셨어. 네가 대장한테 얘기해 돈 좀 땡겨줘” 하는 거에요. 내 돈도 못 받는 처지에 오지랖이었죠. 대장한테 “제가 한 30만원 꿍쳐 둔 게 있으니 가불 삼아 그거 저 형 드릴께요. 밀린 월급하고 뒤에 한꺼번에 주세요”라고 했죠. 그거 아직도 못 받았어요. 어느날 대장 잠수타니 완전히 뜯겼죠. 뭐 그래도 대장하곤 지금도 연락해요. 아무리 그래도 저 배우 데뷔시켜 준 분이잖아요.

그때 하나 깨달았죠. ‘불안한 배우 생활만으론 안 되는구나, 생계는 따로 챙겨야 하는구나’ 라고요. 어차피 연출콜이든 연습이든 오후 2시 이후에 모이니깐, 오전 파트타임 알바 하면 되거든요.

2012년 가을부터 ‘까대기’ 했어요. 까대기요? 짐 내리는 거에요. 새벽 6시에 압구정동 현대 백화점 가면 트럭이 와요. 그럼 물품들 각 매장에 내려놓는 거죠. 한 달에 60만원쯤 받았어요. 피곤하죠. 술도 못 마시고. 새벽 5시엔 일어나야 하고. 그래도 어떡해요, 먹고 살아야 하니.

그러고 보니 알바 무척 많이 했네요. PC방·노래방·호프집·고깃집·물류센터 등등. 최근엔 출장 뷔페 주로 나가요. 시급이 6500원이에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풀로 뛰면 9만원까진 챙겨요. 연극 하는 것보다 훨 낫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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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때는 연극 때려치우고 보험회사 다닌 적도 있어요.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살면 발전이 없겠다, 돈을 좀 모아서 승부를 걸어야 겠다 싶었죠. 근데 보험회사 3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어떤 달은 한건도 계약을 못 했거든요. 제가 변죽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재주는 없더라고요. 없는 말 막 지어내서 보험 들게 하는 거. 그래서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죠.

그럭저럭 지냈는데 사실 작년초 ‘그여자 ***’ 하면서 충격 받았어요. 그때까진 얼추 제 또래들하고만 연기했거든요. 근데 그 작품은 좀 규모가 있어서 그런지 마흔 넘고, 오십 넘은 선배도 몇 명 있었어요.

처음엔 어려웠죠. 경력 10년 이상 차이 나는,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니 뭔가 배울 게 있겠다 싶었는데 웬열.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는 거에요. 자기들은 옛날에 날렸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인지는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더라고요.

정극 근처에서 한두번 얼씬거리고, 대부분 싸구려 연극 했겠죠 뭐. 근데 대우 받고 싶어 안달이고, 여자 후배한테는 치근덕대고, 혹 짤릴까봐 제작사 대표한테 굽실거리고. 그러면서 술만 마시면 연극 정신이 어떠니, 이 판이 썩었다느니, 네 연기는 뭐가 문제라느니… 아, 나도 저 꼴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오싹했죠. 

②편에 계속

이상은 대학로 연극 경력 5년차인 정상덕(가명·28)씨와의 심층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가공한 내용입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일러스트 김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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