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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현장 뛰어보면 잠재력 큰 중소기업 의외로 많아요

중앙일보 2016.02.16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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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진흥공단 윤용일 팀장(오른쪽)이 ㈜에이치피앤씨의 연구원과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연말 사무실로 작은 소포가 하나 배달돼 왔다. ‘고마워요’라고만 쓰여 있었고, 발신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초콜릿상자 하나와 지난해 어려웠을 때 도와줘 고맙다는 편지 한통이 들어 있었다. 누가 보냈을까 궁금했지만 익명으로 보낸 그분의 뜻을 헤아려 마음만 받기로 했다. 이처럼 연말이나 명절 때면 가끔 전화나 문자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다. 어려울 때 도움이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일 것이다.

매출 제자리걸음이던 화장품 회사
부채 10억에 재무상태 열악했지만
열정적인 현장 보고 정책자금 지원
수출 100만달러 유망 기업으로 커


 중소기업 지원기관인 중진공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현장에서 참 많은 중소기업을 만났다. 세계를 변화시킬 획기적인 기술을 가졌다는 기업, 판매는 뒷전이고 수년째 제품개발에만 투자하는 기업, 머릿속 아이디어 단계에서 무작정 정책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기업, 대출상환 계획도 없이 일단 받고 보자는 기업 등 때로는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현재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분들을 상처 없이 설득하는 일은 힘든 일인 것 같다.

 반면 예측 못 했던 화재로 수억 원의 피해를 입으면서 큰 어려움에 있었지만 기술성과 영업능력을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지금은 신규공장을 마련한 식품용기 제조기업, 기존 화장품 도매업에서 수익성이 낮아지자 사업을 그만둘까 고민하다 제조업으로 사업 전환을 시도했던 기업도 생각난다. 이 기업은 작년에 직원을 51명이나 채용하고 수출도 300만 달러어치나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람을 느끼게 해준 중기와 대표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업에 남는 화장품 제조기업이 있다. 설립한 지 10년이 넘은 기업이었는데, 대표자는 한때 코스닥 상장기업의 전문 경영인이었다. 뜻한 바 있어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한 화장품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수년째 매출이 제자리 걸음이었다. 여기에 동남아시아 홍수 등으로 수출까지 막혀 있었다. 이익은 커녕 겨우 적자를 면한 상태였고, 부채는 10억에 가까워 당시의 재무 상태로는 자금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보니 다양한 제품이 이미 개발되어 있었고, 높은 수준의 특허기술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아버지를 돕고 있는 가족회사였는데, 딸이 주도하고 있는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조금씩 브랜드 인지도도 쌓고 있었다. 또한, 경쟁이 치열한 내수시장보다는 ‘Made in Korea’ 제품의 이미지가 좋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도 세워놨다. 부족한 자금 상황에도 현지 방문을 통한 맞춤 제품개발, 현지 마케팅도 체계를 갖춰가고 있었다. 온 가족이 회사를 살리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재무제표에서는 보이지 않던 성장 가능성을 현장에서 보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2012년 4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5년에는 27억원으로, 수출도 100만 달러에 달하는 유망 중소기업이 됐다. 만약 시중 금융기관처럼 재무평가만 했더라면 지원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중기들을 대할 때 쓴소리도 한다. 무작정 자금을 신청하기보다는 담당자에게 꾸준히 상담을 받아보고 대출심사 평가기준에 부합하도록 준비하라고 말한다. 평가를 준비하면서 회사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는 중소기업도 많다. 이를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키우는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매년 듣는 얘기이지만, 올해도 중기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정책자금을 신청하는 많은 기업들이 시설도입 등 사업 확대에 필요한 자금이 아니라, 현상 유지에 필요한 자금만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일수록 정책자금이 선순환 경제구조를 정착시키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민 모두가 기뻐하고, 중기 모두가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윤용일 중소기업진흥공단 충북지역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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