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신사동 조이리치 의류 매장에서 한 남성이 ‘가상체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가상으로 입어 본 빨간 색상의 상의가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인지 확인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증강현실 기기인 ‘다크리 스마트 헬멧’이 소개됐다. 인텔(Intel)이 새롭게 선보인 이 헬멧은 부착된 안경을 통해 착용자에게 실제 눈에 보이는 상황과 부가 정보를 같은 화면에 제공한다. 헬멧을 쓰고 거리를 걸으면 착용자의 이동 거리, GPS상의 위치 등을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만 이뤄질 것 같은 기술을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강·가상현실 기술 활용
매장에 가상체험 공간
어울리는 제품 선택 편리
“빨간색 옷이 제 얼굴색과 어울리지 않으니 바로 아래 목록에 있는 노란색 옷을 선택해 어울리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옷가게에 쇼핑 나온 김성준(30)씨는 불과 10분 사이에 열 벌 이상의 옷을 입어보는 효과를 봤다.
화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가상으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자신이 선택한 옷을 신체 사이즈에 딱 맞게 가상으로 착용할 수 있다. 한 벌을 입는 데는 손가락으로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2~3초면 충분하다.
요즘 패션·뷰티 업계에서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과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이 주목 받고 있다. 증강현실은 현실의 세계에 가상의 세계를 합성해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가상현실은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3초 만에 옷 한 벌 입어 보는 효과
이 기술은 그동안 군사훈련의 시뮬레이션 전투 또는 게임 분야 등에서 주로 활용됐지만 최근 들어 패션·뷰티 분야 등에 잇따라 적용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가상체험을 방 안에서도 즐길 수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무스조는 2011년 증강현실을 활용해 소비자가 잡지 광고에 아이패드를 갖다 대면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이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볼 수 있도록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일본 화장품 업체 시세이도는 얼굴 이미지를 카메라로 찍은 후 증강현실로 화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기를 매장에 설치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아리따움 플래그십스토어를 찾은 송영아(28·여)씨는 “다른 사람이 사용해 본 제품을 입술에 직접 바르기가 거북했는데 화면상으로 여러 립스틱 색상을 바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며 “색조화장을 살 때 가상체험을 한 후 구입한다”고 말했다.
패션·뷰티 분야에서 이 기술이 주목 받는 것은 제품이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구매 전에 제품 정보만으로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제품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는 가상체험 공간을 찾게 된다. CG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에프엑스기어 감해원 마케팅 이사는 “디지털 문명 혜택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빠르고 편리하며 재미있는 쇼핑을 원한다”며 “가상으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기기를 통해 소비자는 5분에 50~60벌의 옷을 입어보고 각 모습을 비교한 뒤 구매한다”고 전했다.
한국트렌드연구소 박성희 책임연구원은 “현대인은 새로운 콘텐트를 찾아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문화에 앞서가고 있음을 과시하려 한다”며 “화면으로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며 신기술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여성이 가상체험 앱을 활용해 여러 색조화장품 가운데 잘 어울리는 것을 골라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신기술인 만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패션과 뷰티 업체가 체험 기기를 설치한 후 이벤트성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가상체험을 하다가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제품까지 구입할 수 있어 다양한 제품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꼼꼼하게 비교한 후 실제 입어본 뒤 구매해야 한다.
한국VR산업협회 현대원 회장은 “가상체험은 일부 산업에만 적용돼 일반인에게 생소한 개념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보급과 기술 발달로 가정이나 매장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다”며 “교육·헬스케어·관광 분야 등에서 활용돼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장석준·박건상(프로젝트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