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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흥남철수 피란선…기념관 세워 역사 알리는 게 내 할 일”

중앙일보 2016.02.15 01:25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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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배에서 태어난 이경필 원장(왼쪽)은 흥남철수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뛰고 있다. [사진 강정현 기자]


경남 거제에 사는 이경필(66) 평화가축병원 원장은 ‘마지막 덕수’로 불린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의 마지막 피란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 장승포항에 도착한 12월 25일 새벽 선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60명밖에 탈 수 없는 화물선이 적재 장비·물자를 모두 버리고 그 공간에 피란민 1만4000명을 거제로 실어나르는 동안 태어난 5명의 새 생명 중 마지막이다. 당시 선원들은 아기들을 김치1~5로 불렀는데 김치5가 바로 이 원장이다. 1000만 흥행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흥남 철수 당시 탔던 배라는 점에서 그는 ‘마지막 덕수’로 불린다. 현재는 1090통일운동 이사를 맡아 활동하면서 피란선이 도착했던 총 9만 명을 구한 장승포항에 흥남철수 기념관을 건립하는 사업에 발벗고 뛰고 있다.

당시 출생 5명 중 1명 ‘김치5’ 이경필


 -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와 국가보훈처 등을 도와 흥남철수 기념관 건립을 위해 계속 뛰고 있다. 건립 목적은 무엇인가.

 “1090운동에 동참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요즘 만나본 젊은층은 6·25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흥남철수는 더더욱 모른다. 인도주의 정신을 배워 국가관과 안보관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인데도 말이다.”

 - 기념관은 어디에 어떻게 세울 계획인가.

 “현재 3만3000㎡의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에 1000㎡ 규모의 흥남철수작전 기념시설이 있지만 포로수용소 유적 안에 부속으로 존재하는 건 격에 맞지 않다. 당시 피란선들이 도착했던 장승포항이 적지다. 마침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과거 여객선 터미널이 비어있다. 그 자리를 리모델링해 기념관을 세우려고 한다.”

 - 어떻게 꾸밀 계획인가.

 “핵심이 당시 피란민을 싣고 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동형의 선박을 정박시키는 일이다. 그 배는 이미 고철로 해체됐지만 같은 형의 다른 배가 미국에 여러 척 남아있다. 인수와 예인에 60억원, 선박을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30억원, 항구 준설과 부대시설 마련 등에 30억원 등 모두 12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독지가의 지원도 필요하고 민간 모금도 할 예정이다. 주한미국대사관과 국가보훈처, 거제시의 도움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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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란민 1만 4000여 명을 거제 장승포항으로 데려왔다.


 - 현재 서울 광화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1950년 흥남, 그해 겨울’(29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장승포에 기념관이 생기면 이런 전시가 상설화하는 것인가?

 “당시 레코드부터 양동이·놋대야·깔때기·군용 드럼통·깡통도로표지판, 또 군용담요를 잘라 만든 바지 등 피난시절 물품들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싶다. 지금도 거제도 민속박물관에서 수집하고 있다. 기념관을 건립하면 한쪽에는 민간인을 구출한 인도주의적 역사를, 다른 한쪽엔 이를 위해 벌인 장진호전투를 동시에 기념하는 최초의 사업이 될 것이다. ”  

- 흥남철수 피란선에서 태어난 것만 알려졌는데 그 뒤 어떻게 살아왔나.

 “우리 가족 전체가 새로운 기회를 준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는 ROTC에 지원해 전방사단에서 근무했다. 당시 청진기를 들고 북한 땅굴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피란선에 탔던 형은 비둘기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고엽제 환자로 판정받고 사망했다. 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조종사로 군 복무를 하고 있다. ”

- 흥남철수에 참가했던 미국 측 인사와 그 가족과 소통하는가?

 “당시 미 제 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로서 한국인 통역 현봉학과 함께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을 설득해 피란민을 화물선에 태운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가족과는 수시로 만나고 있다. 생존 인물로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상급선원이던 로버트 러니(87)가 있다. 6·25 참전 뒤 미국에서 변호사가 된 인물인데 당시 이 피란민이 만든 기적과 레너드 라루 선장의 인도주의 행동을 알리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흥남철수는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라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기념관 건립은 그 은혜를 입은 세대의 의무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chae.intae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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