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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갈라설 게 아니면 공통 목표부터 찾아라

중앙일보 2016.02.15 00:33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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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노동개혁법 때문에 나라가 난리다. 정부는 밀어붙이고, 국회는 두 손 놓고 있고, 노동계는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동개혁법안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주장하는 바는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너무 낮아 경제에 부담이 되고, 특히 세계적 경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얘길 들으면 그럴듯하다. 반대 논리로 노동유연성이 높은 북유럽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없이는 노동유연성은 노동자만을 희생시킨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또 그런 북유럽 국가들의 세금 부담률은 어마어마해 우선 세금을 높여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하루 날짜를 정해서 그날 12시를 기해 모든 걸 동시에 시작하는 거다. 북유럽 국가 정도의 노동유연성 확대, 사회보장제도 확대, 증세까지 같은 날 ‘원샷’에 실시하는 거다. 그럼 문제가 해결될까? 또다시 누구는 유리지갑이어서 세금을 다 내는데 누구는 적게 내서 불공평하다는 불만부터, 끝없는 문제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동시에, 그것도 아무런 갈등이나 누구 하나 손해 보는 사람 없이 진행할 방법은 없다. 당연히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단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 먼저 이득을 보는 사람,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부터 기회를 잡는 사람들까지 생기게 된다. 그럼 이런 불공정, 불평등, 희생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지향하는 장기적이고 궁극적 목표, 즉 우리가 어디로 가기 위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인식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목표에 대한 합의만 있다면, 사회 전체로 보면 일부의 단기적인 손해나 손실은 참아 달라고 할 수 있고 참을 수도 있다. 과거에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이런 미래의 목표가 명확하게 있어야지만 현재 그 과정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선의, 최적의 방법인지 여부도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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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현재 노동개혁법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을 보면 같은 목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달성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마치 서로의 목표 자체가 다른 듯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논의 자체가 별로 없다. 그냥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최종 목적인 듯이, 그것이 가져올 단기적 결과만이 최종 결과인 듯이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절대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평행선만 보인다.

 원래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항상 갈등은 증폭된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엄마와 보낼 필요가 없다는 아빠의 논쟁은 당장 학원으로 인해 아이가 얻을 것과 잃을 것만 가지고 논의하면 큰 부부 싸움으로 번진다. 왜? 서로 전혀 다른 측면만을 보고 얘기하는데, 사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어떻게 틀릴 수 있나. 친구와 여가시간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어떻게 틀릴 수 있나. 둘 다 맞는 말로 서로를 이기려고 들면 답이 없다. 서로에게 자신이 보는 것을 못 보는 바보가 되든지, 빤히 알면서도 우기는 듯한 못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부모가 합의를 보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크길 바라는지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그것을 달성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물론 그래도 부모가 쉽게 합의할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나마 같이 대화해 볼 최소한의 기초라도 마련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은 단기적인 관점을 가지게 할 많은 요인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나쁜 일을 막는 데 급급한 예방적 초점주의(prevention focus),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주의,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소유를 중시하는 물질주의, 이런 특성들을 모두 아우르는 한국 문화의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갈등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식의 교육에 관한 갈등에서 한 명은 모른 척해야만 된다는 믿음처럼. 자녀의 성공요인 중 아빠의 무관심이 포함된다고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지금 당장’만을 얘기한다면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우선 서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미래의 모습을 명확히 밝혀 보자. 무조건 해외의 당장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바보짓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그 목표가 같다면 지금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과 순서의 효율성 및 적절성을 논의하자. 만약 아예 목표가 다르다면… 자녀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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