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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미국, 자국서 흑자 낸 교역국에 경고…작년 한국 향해 “외환시장 개입 주시”

중앙일보 2016.02.15 00:01 경제 4면 지면보기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상당히 늘렸다. 이 사안을 주시하겠다.”

미 환율 조작국 제재 법안 곧 발효
“외환·통상 연계 조직 상설화 해야”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에 대한 반기 보고서 내용이다. 보고서는 또 “독일과 중국·일본·한국 같이 흑자 규모가 큰 국가는 좀 더 균형잡힌 경제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는 2014년 4월과 10월의 보고서에서도 “한국 정부는 시장이 무질서한 예외적 상황에만 외환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자국을 상대로 흑자를 내는 교역국에 대한 경고를 현실화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이용해 경쟁국을 압박하려고 나섰다. 꺼내든 카드는 ‘베넷-해치-카퍼 수정법안’(BHC 법안)이다.

대통령 서명만 앞두고 있는 이 법안은 서명 즉시 발효된다. 발효시 6개월 내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를 통해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하면 즉시 제재에 들어간다.

 한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을까. 한국 원화가치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장기간 달러당 1000~1100원대를 유지했다. 환율이 일정 수준에서 안정되면 경제 정책이나 기업 전략을 수립하는데 유리하다.

중국·대만·이스라엘과 함께 2000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것도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원화가치가 안정된 영향이 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미 무역수지 흑자 비중도 2010년 0.9%에서 2014년 1.8%로 증가세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BHC 법안 발효시 중국·일본 같이 정치·경제적 파급력이 큰 국가보다 한국·대만 같이 경제규모가 작고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데 꾸준히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부터 제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2차 가입 협상을 진행하려 할 때 가입 선결 조건으로 미국이 무역 불균형의 단계적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감내해야 할 대가는 크다. 해당 국가에서 진행하는 모든 신규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자금 지원이나 보험·보증을 중단한다.

해당 국가의 제품·서비스를 미 연방정부에 공급하는 것도 금지된다.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수석대표를 통해 IMF가 해당 국가의 거시경제·환율 정책을 철저히 감시하고 환율 조작 증거를 공식 논의하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환율 조작’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외환당국은 시장의 쏠림현상이 있을 때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의 일환으로 시장에 개입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또 미국이 BHC 법안으로 실질적인 제재까지 나설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본다. 미국 정부가 보복성 관세 부과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5월 BHC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미국과 TPP 협상시 BHC 법안으로 보복 관세 조항을 만들면 TPP 참여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보복 관세까지 매기며 무역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다자간 무역협정을 잇따라 체결한 미국이 자국에 조금만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BHC 법안 같은 초강수를 꺼내들 수 있다”며 “미국 무역대표부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기존 통상교섭본부를 부활시키고 외환·통상 연계 부문을 추가한 조직을 상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환 기자, 세종=김민상 기자 khkim@joongang.co.kr

◆베넷-해치-카퍼 수정법안=BHC 법안은 미국의 ‘무역촉진법 2015’ 중 ‘제7편 환율조작’에 대한 별칭이다. 미국과 무역을 통해 흑자를 내는 나라,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는 방향으로 환율에 개입하는 나라 등을 대상으로 국제기구와 미국 정부가 제재하는 내용이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민주·공화당 마이클 베넷, 오린 해치, 톰 카퍼 상원 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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