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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서 내가 입은 옷 보고 집업 원피스 만들었대요

중앙일보 2016.02.13 00:51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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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가방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핸드백은 한국으로 건너와 ‘3초 백’이란 별명을 얻었다. 도심에서 3초에 한 번씩 마주칠 정도로 흔하다는 의미다.

[사람 속으로] 루이비통 글로벌 광고모델 된 배우 배두나

젊은 여성에게 흔한 이름을 따서 ‘지영이 백’으로도 불렸다. 한국인의 유별난 ‘명품 사랑’을 꼬집는 별칭이다.

실제로 한국은 명품 소비 대국으로 꼽힌다. 적은 인구에 비해 명품 소비가 활발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눈여겨보는 나라다. 해마다 가격을 올려도 없어서 못 팔고, 비싸야 더 팔리는 역설이 존재하는 독특한 시장이기도 하다.

한국은 소비의 장(場)이고, 명품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의 생산자이자 공급자라는 오래된 도식적 관계가 최근 바뀌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 컬렉션을 발표하는가 하면 한국 배우를 글로벌 광고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배우 배두나(37)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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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는 어느새 글로벌 배우로 성장했다. 올해는 연중 절반은 8개국을 돌며 미국 드라마 ‘시즌 8’을 촬영할 계획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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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가 참여한 루이비통의 글로벌 광고 캠페인 ‘시리즈 4’. 명품 브랜드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에 한국 배우를 발탁한 것은 처음이다.


루이비통은 올 봄·여름 시즌 배두나를 글로벌 광고 캠페인 ‘시리즈 4’ 모델로 선정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아시아 지역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광고 캠페인에 한국 배우를 기용한 건 처음이다.

루이비통 여성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45)의 뮤즈(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인 배두나를 최근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났다.



루이비통 광고 모델이 된 소감은.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의 모델이 돼 영광이다. 니콜라의 패션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꼭 한 번 일해 보고 싶었던 세계적인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와 작업할 수 있어서 기뻤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2년 전 니콜라가 루이비통으로 옮긴 뒤 연 첫 패션쇼에 초대를 받았다. 모나코에서 열린 크루즈 컬렉션을 보러 갔다. 그땐 서로 수줍어서 짧게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이후 컬렉션을 발표할 때마다 초대했고 여러 차례 만나면서 친해졌다.
세계적 디자이너의 뮤즈가 된다는 것은.
 뮤즈는 크리에이터와 영감을 주고받는 존재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창작에 도움을 주는 거니까. 창작자와 뮤즈는 비즈니스 관계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그런 관계인가.
 파리에 가면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일 얘기는 안 하지만 힘든 일이나 고민은 서로 털어놓는다. 피에르 아르디(슈즈 디자이너)나 줄리앙 도세나(파코라반 디자이너) 같은 니콜라의 지인들과도 친구가 됐다. 휴가를 함께 가기도 한다. 최근 여럿이 스페인의 한 섬에서 휴가를 보냈다.
 
무엇이 통하나.
 닮은 구석이 많 다. 사교적이지 않고 낯을 가리고 취향이 비슷하다. 그는 내 영화를 좋아하고 나는 그의 패션을 좋아한다. 영화 ‘괴물’을 다섯 번 넘게 봤다고 해서 놀랐다. 내가 출연한 미국 드라마 ‘센스 8’을 함께 봤는데 재미있어 했다. 너무 소소해서 엄청난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웃음)

 제스키에르는 배두나에 대해 “개성과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이번 컬렉션 작업을 하면서 그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궁수(영화 ‘괴물’), 때로는 복싱선수(미국 드라마 ‘센스 8’)나 무기력한 인형(일본영화 ‘공기인형’) 등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재능에 감탄했다”면서 "그 예술적 감성과 강렬한 힘이 좋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고를 때 나만의 취향과 고집이 있었다”며 “만인(萬人)이 좋아하는 영화라기보다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를 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배두나를 연상시키는 컬렉션도 있던데.
“글쎄…. 한 번은 ‘괴물’에서 내가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 같은 걸 너무 만들어 보고 싶다는 얘기를 니콜라가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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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여성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선보인 ‘집업 트레이닝 원피스’(오른쪽)는 영화 ‘괴물’ 속 배두나 의상을 닮았다.



제스키에르는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트레이닝복 스타일을 입은 모델을 대거 무대에 올렸다. 집업 트레이닝 원피스는 어딘지 모르게 배두나가 ‘괴물’에서 내내 입고 다닌 자주색 트레이닝복을 떠올리게 했다.

 




명품 소비국에서 영감을 주는 나라로 격상된 느낌인데.
 한 번은 뉴욕에서 열린 루이비통 행사에서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사진작가 신디 셔먼을 만났다. 셔먼은 내게 ‘괴물’은 최근 5년 동안 본 영화 가운데 최고였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건 봉준호 감독님이 정작 ‘괴물’을 찍을 때 셔먼의 사진집에서 영감을 얻어 몇몇 신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감독님도 셔먼을 좋아한다. 영감이 돌고 도는 셈이다.
 
‘강렬한 힘’이 여배우에 대한 찬사가 됐다. 아름다움에 관한 기준도 변했을까.
 독립적이고 힘 있는 여성이 멋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못생긴 얼굴도 예뻐 보인다. 그게 사람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강하다는 건 마음을 열고 나를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니콜라의 컬렉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델들이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당당하게 워킹을 한다는 점이다. 페미닌하지 않으면서도 섹시하다.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반드시 지적이고 내면이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꽉 찰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일등에 집착한 나머지 정말 잘하지 않으면 잘한다고 생각을 안 한다. 10 중 8~9를 알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5만 알아도 좀 안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사진 작가 유르겐 텔러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는 즉흥적이고 날것을 찍기를 원했다. 특별히 주문하는 게 없었다. 내가 포즈를 취하는 것보다 가만히 서 있거나 대기 중일 때 갑자기 찍는 걸 좋아했다. 대신 사전에 교감을 충분히 했다. 광고 콘셉트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수다를 떨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 머릿속에 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해외 활동이 활발한데.
 해외 활동을 꿈꿔본 적도 없지만 무서워해 본 적도 없다. 워쇼스키 감독이 ‘클라우드 아틀라스’ 오디션을 보라고 권해 오빠가 캠코더로 찍어준 영상을 보냈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이상한 발음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손미(배역)가 되었더니 합격했다. 언어보다는 진정성이 더 큰 힘이다. 올봄 ‘센스 8’이 시즌 2 촬영에 들어가면 1년에 절반은 8개국을 돌며 촬영한다. 나머지는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
 
영어는 어떻게 익혔나.
영어로 책을 많이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영어로 읽는 식이다. 일하는 영어보다 스몰 토크(가벼운 대화) 영어가 훨씬 어렵다.

[S BOX] 제스키에르 “배두나의 개성·재능에 감탄…컬렉션 작업 때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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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左), 니콜라 제스키에르(右)

2013년 10월 마크 제이컵스(53)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루이비통을 떠난다고 했을 때 명품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1997년 합류한 이후 16년간 디자인 사령탑으로서 루이비통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키운 일등공신이기 때문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을 디자이너에게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인물이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45)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스키에르의 성적표는 ‘우수’. 루이비통이 속한 LVMH그룹은 지난해 1~9월 매출액(235억 유로)이 2014년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다. 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루이비통이 성장을 이끌었다.

배두나는 제스키에르에 대해 “과거에서 영감을 얻어 현재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범상치 않은 디자이너”라고 평했다.

1800년대 문을 연 루이비통의 첫 부티크 출입문에 달려 있던 둥그스름한 ‘LV’ 로고를 부활시킨 게 한 예다. 혁신적인 실루엣과 첨단 소재를 사용해 루이비통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5년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미래적이고 건축적인 디자인과 소재를 놓고 다양한 시도를 한 게 바탕이 됐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독학으로 패션을 배웠다. 15세부터 패션 브랜드에서 인턴을 했고, 20세에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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