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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중앙일보 2016.02.13 00:28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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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1, 2
이충렬 지음, 김영사
1권 568쪽, 2권 564쪽
각권 1만6500원

가톨릭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오푸스데이, 해방신학을 표방하며 중남미에서 게릴라전에 나섰던 사제들, 유럽에서 자유주의와 싸웠던 수구적인 교회, 민주화의 한 축을 이뤘던 한국 가톨릭 교회···.

 다양성 속에서도 가톨릭 교회는 하나다. 일치성은 수적인 성장성과도 연결된다. 교황청이 지난해 4월 발표한 『교회통계연감』에 따르면 2013년말 기준으로 12억5400만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는 세계 인구 71억의 17.7%를 차지한다.

전교하는 모습이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 수는 540만명이다. 교적(敎籍) 관리가 철저해 거품이 별로 없는 수치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7주년(2월 16일)을 맞아 두 권으로 나온 『아,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의 다양성·일치성·성장성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물론 김 추기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또 궁금한 게 많아 그에 대한 이 전기(傳記)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한 인물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 현대사 순간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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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13일 김수환 추기경이 중앙일보와 인터뷰 도중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명동성당에는 개헌 서명 접수대가 설치됐다. [중앙포토]


 한국 교회는 모범적이다. 소아성애 범죄나 대처(帶妻) 문제가 만연된 다른 나라 교회도 많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만큼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좋아한다. 다양성·일치성·성장성이라는 삼위일체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극대화됐다.

비결이 뭘까. 『아, 김수환 추기경』을 읽다 보면 ‘김수환 추기경의 리더십이 비결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1933년 12만명에 불과했던 가톨릭 인구가 오늘날 540만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남긴 토대가 있다.

 그는 우리가 세속의 지도자들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자질을 갖추었다. 김수한 추기경은 옹기장이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장사꾼이 되고 25세에 장가들어 어머님께 효도하는 것이 꿈이었다. 40세에 그를 임신했던 어머니의 열망을 물리치지 못하고 사제의 길로 접어들었다. 신부가 될 자격이 있는지 항상 고민했고 항상 신(神)에게 기도했다.

 하늘은 그를 최고의 지도자로 훈련했다. 신학교에서 그는 당시 최고의 엘리트 교육, 요즘으로 치면 ‘세계화’ 교육을 받았다. 영어·프랑스어·독어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천황의 칙유(勅諭)에 대해 소감을 쓰라는 수신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라서 소감이 없다’고 적어냈다가 훗날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는 장면 교장에게 따귀를 맞았다.

 유학을 갔으나 학위와는 인연이 없었다.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다니다 학병으로 징집됐다. 독일 뮌스터대학교 박사과정에서 7년간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논문 지도교수의 공석으로 귀국했다.

 가톨릭시보사 사장, 마산교구 초대교구장을 거쳐 1969년 47세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됐다. 사장 시절 업무상 바티칸 제2공의회(1962~65)의 정신에 대해 국내에서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게 됐다. 이는 그가 추기경으로 선임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신학뿐만 아니라 공의회 문헌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그는 교회 현대화에 앞장 설 수 있었다.

 그의 리더십은 평등의 리더십이었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했다. 신자와 비신자를 구별하지도 차별하지도 않았다. 또 중도와 온건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추기경님, 저는 종교란 마음을 순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박 대통령의 말은 사실 보수적인 신자들을 대변했다.

한편 현실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신자들은 민주화 이후 김 추기경의 보수화에 절망했다.

 흥미로운 사실들도 많이 나온다. 김 추기경은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가 된 조부 김보현(요한) 공은 충청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수한’이 아니라 ‘수환’으로 등록됐다는 것을 12살 때 처음 알았다. 호적계 서기가 잘못 적었다.

그는 ‘젬마’라는 세례명의 여성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적이 있다. 서울대교구장이 됐을 때 그가 대구대교구 출신이기 때문에 불만을 품은 사제들도 있었다. 훗날 불자가 됐지만 전두환 대통령도 한 때 베드로라는 세례명의 가톨릭 신자였다. 김 추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자주 기도했다.

 이 전기는 지금까지 나온 김 추기경에 대한 책들의 ‘종합·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이충렬이 3년 동안 준비한 역작이다. 기존 자료들을 샅샅이 뒤졌다. 20여명을 인터뷰했다.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잡았다.

예컨대 일부 주장과 달리 김 추기경은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일등병이었다. 또 최초 공개된 100여장을 포함해 360장의 사진을 수록했다.

 왜 사람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할까. 그의 리더십이 그리운 게 아닐까.

[S BOX] “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해”

『아, 김수환 추기경』에 나오는 김 추기경의 말들 중에서 오늘에도 울림이 있는 것들을 몇 개 뽑아봤다.

-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고질적 부패와 사회 불안의 연원이 현재의 부조리한 권력과 금력의 정치체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이 이렇게 정권욕에 눈이 멀어 장기집권을 하면 나라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불행하게 끝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 우리는 7·4 남북공동성명이 전쟁수단을 영구히 포기하고 대화로써 조국통일을 달성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것을 평화위장의 전쟁준비수단이나 권력정치의 기만전술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

-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아들, 너의 제자, 너의 젊은이, 네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 여러분과 또한 모든 이를 위하여(사목 표어)

- 다른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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