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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연대와 정치

중앙일보 2016.02.13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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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관계망으로 켜켜이 둘러싸여 있다. 때론 얽히고설킨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 홀로 있는 시간을 꿈꾸며, 혼자 보내는 사색의 시간으로 재충전과 치유를 얻기도 한다. 그렇지만 관계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라는 바도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언제든 관계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귀환이 약속되지 않은 혼자의 시간은 공포스럽다.

사회적 연대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정치의 본령
자신의 권력만 챙기는 분열의 후보에겐 준엄한 심판을

 가족·이웃·친구들에서 시작해 직장, 더 넓게 국가로 이어지는 관계망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연대를 이루며 나의 일부가 된다. 나는 부모·자식·형제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회사가 이룬 것을 함께 기뻐한다. 국가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수혜 여부를 떠나 내 나라의 경제 발전에 뿌듯함을 느끼며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일지언정 일제 강점기의 성노예 징발에 대해 나의 일로 분노를 느낀다.

 관계망을 묶는 연대의 성격은 다양하다. 가족은 정서적 유대로, 회사는 경제적 유대로, 국가는 이념적 유대로 묶인다. 명절에서 느끼는 친척들 사이의 온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이웃들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정서적 유대를 이루는 관계망이 점차 좁아지고 약해지고 있다. 한편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사회적 차원의 관계망은 날로 확대되어 간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관계의 분량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관계망의 농도는 묽어지면서 범위는 넓어진다. 사회적 연대가 사람들의 관계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진다.

 국가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망이며, 법과 제도는 그 핏줄과도 같다. 교육·의료·사법·군사·복지제도 등 사회제도는 정부를 비롯한 사회 기관과 개인들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조율해 공동체가 활력 있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제도는 성원들의 거래 관계를 규정하는 냉정한 합의서를 넘어서는 짙은 의미를 갖는다. 생명, 인간, 권리와 의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동체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성원들은 제도에 따른 행위체계에 참여함으로써 그런 관점하에 연대된다.

 연대감의 근간이 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정치일진대 정치인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점차 다원화되어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이 공존하며 때로 대립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성은 민주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또 무쌍하게 변해가는 글로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건강한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이 더불어 의지할 수 있는 연대를 미래지향적으로 엮어내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인내와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막중한 일이다. 힘들고도 중대한 일을 맡은 정치인들은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정치인의 작업은 진공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들은 상이한 이해와 가치관을 대변하기 마련이며, 의견의 대립에서 시작해 합리적 조정을 거쳐 제도를 만들고, 그에 따라 연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연대를 해치는 것은 의견의 차이와 대립이 아니라 합리적 조정을 통한 합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분열 행위다. 칭찬받을 분열 행위가 어디 있겠는가만 정치인이 범하는 분열 행위는 의미가 다르다. 막말과 근거 없는 비방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분열 행위는 정치인을 막론하고 비윤리적이지만, 정치인의 경우 더 나아가 직무유기다. 정치의 본령이 연대의 제도를 만드는 일일진대 그런 정치인이 만든 제도는 국민에게 연대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로 다른 목소리를 고사시키려 한다든가 지역 정서에 기대어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열 행위는 비겁할 뿐 아니라 정치인의 기본 의무를 위배하는 일이다.

 선거철이다. 얽힌 실타래를 풀고 공동체적 연대를 미래지향적으로 구성해내는 책임감과 능력을 가진 후보가 누군가를 살펴볼 때다. 사회적 연대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이득과 권력을 챙기려 분열 행위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하게 나의 권리를 행사할 때다. 함께 행복하기 위한 공동체의 연대를 향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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